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 설치할 대형 벽화 제작에 재능을 기부한 예술인들이 27일 소록도 한센인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얼굴을 촬영하고 있다.
“꼬라지 찍어 뭐 해?”
한센병 할머니 굴곡진 얼굴
소록도병원 옹벽에 새기는
‘초대형 벽화 프로젝트’ 진행
섬주민 수백명 음각 내년 2월 완성
한센병 할머니 굴곡진 얼굴
소록도병원 옹벽에 새기는
‘초대형 벽화 프로젝트’ 진행
섬주민 수백명 음각 내년 2월 완성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죽으면 돌아가신 영감을 만나야지.”
27일 오후 3시30분께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 부근 한센인 마을. 방에 함께 사는 조양님(90) 할머니와 이수용(82)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러 들어간 ‘벽화 제작진’이 소원을 묻자 밝게 웃었다. “반듯하지 않은 꼬라지, 찍어서 뭘해”라고 손사래치던 두 사람은 제작진의 만인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촬영에 응했다. 6년 전엔 영정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도 거부했지만, 윤곽만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설득에 기꺼이 사진기 앞으로 나섰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수십년 세월과 눈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주민들은 저마다 때로는 환한 웃음을, 때로는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1970년 소록도에 들어와 42년을 산 이 할머니는 “풋각시 때 들어와서 이렇게 늙었어. 내 모습은 보고 싶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사진을 남겨두어야지”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방 벽에 소록도를 찾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5년 전 먼저 숨진 할아버지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고는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올려다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다.
한센인 전문병원인 국립소록도병원 옹벽에는 내년 2월 길이 110m, 높이 1~3m의 초대형 벽화가 등장한다. ‘아름다운 동행-소록도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소록도의 과거·현재·미래를 담는다. 섬주민 580명과 병원 의료진 200명, 자원봉사자 50여명 등 소록도 산증인의 얼굴이 음각과 양각으로 새겨진다. 먼저 얼굴 사진을 찍은 뒤 소묘로 그리고 윤곽을 따라 화강석이나 대리석 조각을 붙이는 기법으로 제작이 이뤄진다. 벽화 전면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가로 30㎝, 세로 40㎝ 규모의 돌판 타일 1000여장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아기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의 지형, 한센인의 감금·단종·노역을 대신 표현한 사슴의 형상도 곁들인다. 주민들도 직접 타일을 박거나 색칠하며 동참한다.
김명호(62) 자치회장은 “아직은 마음에 상처가 남아 사진을 찍는 것을 꺼려한다. 세상과 주민, 병원과 환자가 하나 되는 바람을 벽화에 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작업은 고흥의 남포미술관이 소록도의 상징으로 남길 예술품을 만들자는 뜻으로 시작했다. 제작비 1억원 중 70%는 조각가 박대조(43)씨를 비롯한 예술인 10여명이 재능을 기부했고 대림산업이 1000만원을 보탰다. 재료비 3000만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나눔사업으로 선정해 시민들한테 모금을 하고 있다.
소록도는 1916년 일제가 한센인들을 유폐시키고 단종·감금·노역을 강제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곽형수 남포미술관장은 “한센인들을 세상과 이어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형철 소록도병원장은 “외로운 한센인들이 만인보 만들기에 참여해 위안을 받고 치유의 활력을 얻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소록도/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박근혜 TV토론’ 방청객 질문까지 ‘사전조율’ 논란
■ 박 ‘박정희 대 노무현’ 문 ‘과거 대 미래’ 프레임전쟁 시작
■ 일 ‘홍백가합전’ 한국가수 쏙 뺀 까닭은?
■ 중국 누리꾼 ‘항모 스타일’ 패러디 열풍
■ 자동차 블랙박스 ‘저질 중국산’ 주의보
■ 원더걸스 선예, 내년 1월 선교사와 결혼
■ 예의 없는 학생, 그들이 내 스승
■ ‘박근혜 TV토론’ 방청객 질문까지 ‘사전조율’ 논란
■ 박 ‘박정희 대 노무현’ 문 ‘과거 대 미래’ 프레임전쟁 시작
■ 일 ‘홍백가합전’ 한국가수 쏙 뺀 까닭은?
■ 중국 누리꾼 ‘항모 스타일’ 패러디 열풍
■ 자동차 블랙박스 ‘저질 중국산’ 주의보
■ 원더걸스 선예, 내년 1월 선교사와 결혼
■ 예의 없는 학생, 그들이 내 스승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