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l 대학서 ‘신입생 예절지침’ 강요
달려가 목청 높여 하도록 압박
선배 지시 어기면 연대책임 질책
학교 “최근 확산돼 자숙 요구했다”
달려가 목청 높여 하도록 압박
선배 지시 어기면 연대책임 질책
학교 “최근 확산돼 자숙 요구했다”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사립전문대 ㄷ대학교 교정. 따스한 봄볕 아래 자유로운 기운이 넘쳐야 할 교정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 학생이 20여m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는 학생에게 달려가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고, 또다른 학생도 질세라 쫓아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학생회관 2층 식당 앞에서도 같은 모습이 재연됐다. 학생 3명이 어슬렁거리듯 나타나자 길게 줄을 늘어섰던 앳된 모습의 학생 7~8명이 갑자기 열을 맞추더니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이들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이라고 외쳤다.
‘선배님’을 목놓아 부르며 달려가 인사하는 학생들의 목에는 ‘○○학과 2013학번 △△△”라는 명찰이 하나같이 걸려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20일도 안 된 새내기들이 이런 ‘군대식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른바 ‘신입생 예절’ 지침 때문이었다.
선배들이 만들어 나눠줬다는 이 지침은 마치 사관학교 생도들의 생활방식을 연상케 했다. 인사 방식을 보면 “주변을 항상 살핀 후 선배님이 먼저 (신입생을) 발견하기 전에 (신입생이 먼저 선배를 발견해) 인사드린다”고 돼 있다. 또 “담배는 선배님에게 먼저 허락을 받는다. 전화를 받을 때에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학번 △△△입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3에스(S)’라는 문구도 있는데, 이는 스피드(Speed·속도), 사운드(Sound·소리), 센스(Sense·감각)의 약자다. 1학년생 ㄱ씨는 “선배를 보면 빠르게 달려가 큰 목소리로 인사하는 감각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어기면 모독에 가까운 잔소리를 듣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1학년생 ㄴ씨는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개강 직후 강의실에서 ‘집합’ 지시를 받고서 1시간 넘게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고 지침에 있는 인사법을 3~4차례씩 큰 소리로 따라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1학년생은 선배의 지시를 어기면 이른바 연대 책임도 져야 한다고 털어놨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로 통학하는 ㅇ씨는 “집합 명령을 어기고 집에 갔는데,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를 하는 동기생들이 한밤중에 집합을 당해 1시간 넘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학교 관계자는 “특정 학과에서만 신입생에게 이런 식의 예절을 지키도록 한 것으로 알았는데 최근 갑자기 모든 학과로 퍼진 것 같다. 며칠 전 이 문제가 인터넷을 타고 나돌아 선배 학생들에게 자숙을 요구했다. 조만간 학생회 간부들과 만나 이런 문화를 바꾸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성/글·사진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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