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림산업 폴리에틸렌공장 폭발사고로 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참사가 발생한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모습. 전남도 제공
[뉴스쏙] 여수산단, ‘머리에 이고 사는 화약고’
지난 14일 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안의 대림산업㈜ 공장에서 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대형 폭발참사가 터졌다. 1960년대부터 들어선 울산·여수·서산 등 전국 석유화학공장들과 구미·포항 등 오래된 산업단지 공장들의 안전성을 시급히 점검해야 한다는 숙제를 던졌다. 노후 설비, 정비·보수 공사의 다단계 하청, 겉핥기 안전 감독, 솜방망이 처벌, 허술한 사고 대응 등이 도마에 올랐다. 불안해도 참아왔던 주민들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된 석유화학산업단지를 이대로 두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는 죽음의 공포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9일 오전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안 대림산업㈜ 폴리에틸렌공장 앞에서 닷새 전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 6명의 넋을 위로하는 노제가 열렸다. 살풀이에 나선 배우가 ‘불 속 주검이 온몸을 뒤틀며 절규하다 한줄기 정화수로 정수리를 식힌 뒤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장면’을 연출하자 노동자 500여명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공장 정문 앞에는 “재발방지 대책을 반드시 수립하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여수석유화학산업단지는 1967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만들어졌다. 46년 만에 면적은 서울 여의도 4배 크기인 31.6㎢로 늘어나 지에스(GS)칼텍스, 여천엔시시(NCC), 엘지(LG)화학, 한화케미칼, 제일모직, 남해화학 등 업체 264곳이 입주했다. 지난해 생산액 97조원, 수출액 382억달러로 석유화학업종 국내 생산의 4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낡은 시설, 보수는 미숙련 노동자가
1967년 탄생…석유화학산업 ‘중심’
설비 내구연한 규정 없어 노후화 방치
1990년대 후반 보수 외주화 물결
다단계 하청 초단기 노동자 몫으로 기업들, 솜방망이 처벌에 안전 뒷전
사고 나도 원청 사업주 ‘벌금형’
영세한 하청업체 처벌에만 치중
지자체도 과태료 등 조처 ‘머뭇’ 내부 위기대응 체계도 허술
공장간 간격 좁고 차단벽마저 없어
유독가스 누출 땐 대재앙 가능성
“안전관리 통합·일원화해야” 목소리 ■ 초단기 미숙련 노동자가 낡은 시설 정비·보수 여수산단의 대부분 기업들이 입주 30~40년을 넘겼다. 탱크·배관 등 설비·장치들이 낡아 보수·정비 업무 부담이 커지고 있다. 포스겐·벤젠·톨루엔·부타디엔 같은 유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탓에 부식 속도도 빠르다. 그런데도 설비의 내구 연한을 제시하는 규정은 없어 기업마다 땜질식 보수·정비로 생산 활동을 이어간다. 현대 과학문명의 꽃이라는 석유화학산업의 화려한 수식 뒤에 드러워진 그늘도 그만큼 짙다. 여수산단에선 집계를 시작한 70년대 이후 287건의 사고가 발생해 사망 116명, 부상 201명, 대피·오염 3071명, 재산피해 1180억원 등 손해가 났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고에 지역 주민들은 여수산단을 ‘머리에 이고 사는 화약고’로 부르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사고는 90년대 이후 빠르게 늘고 있고, 사고가 터지면 피해 규모도 훨씬 커지는 양상이다. 30여년 전 입주한 ㄱ(52) 사장은 “초창기엔 기업들의 운영·보수 인력이 충분했다. 90년대 후반 원가절감과 경쟁력이 강조되면서 인원 감축, 분사·외주의 물결이 거셌다. 이후 보수·정비가 기업마다 골칫거리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생산라인 보수를 외부 업체에 맡기자 산단 주변에 보수 전문업체 200여곳이 난립했고, 이들 업체에서 일감을 받는 초단기 계약직 노동자도 2만여명으로 늘어났다. 기업들이 원가절감을 위해 정비 기간을 한해 40일에서 20일로 단축하고, 입찰도 적정가에서 최저가로 변경하면서 하청업체들이 그때그때 재하청으로 노동자를 모집하는 다단계 하청 구조가 똬리를 틀게 됐다. 김경철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 사무국장은 “다단계 하청 탓에 공단 주변에 ‘일회용 노동자’들이 숱하게 늘어났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이니 위험하다고 작업장에 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 사고 나도 벌금, 안전은 뒷전 2000년 8월 여수산단 호성케멕스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7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노후 장비를 교체하고 가동을 재개하면서 황산을 제거하지 않아 일어난 인재였다. 경찰은 공장장 등 2명을 구속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풀려났고, 대표이사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01년 10월엔 호남석유화학의 나프타 탱크에서 폭발사고가 나 3명이 죽고 1명이 다쳤는데, 대표이사에게 벌금을 물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가 안전 조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지면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징역형을 받는 사업주는 매우 드물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최근 3년 동안 발생한 중대 재해 2290건의 사업주 처분 결과를 분석했더니, 벌금형이 57.2%, 혐의 없음 13.8%, 기소유예 11.1%, 공소권 없음 2.6%, 각하·선고유예 1.8%였다. 징역형은 2.7%에 그쳤고 그나마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업주들의 솜방망이 처벌이 되풀이되면서, 기업들이 안전은 뒷전으로 미뤘다가 사고 나면 보상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장종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남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사망사고가 나면 회사 책임자를 살인에 준하는 범죄로 엄벌해야 한다. 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등은 산재 사망 때 ‘기업 살인’으로 처벌하는 특별조항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산재 사망 기업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기업 살인 특별법’ 제정을 늦춰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현장에서 희생되는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소속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수산단에서 사고가 급증했던 2001~2003년 사망자를 살펴보니 70%가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사고의 책임도 대기업인 원청업체보다 영세한 하청업체들에 더 지웠다. 사고 조사 등이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천중근 전남도의회 의원(전 대림산업 노조위원장)은 “여태껏 사고 조사는 기업주의 책임을 무마하고, 노동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요식행위였다”고 말했다.
노동당국과 자치단체의 산업안전 감독망이 느슨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영순 의원(새누리당)은 “대림산업은 지난해 6월 폭발사고 뒤에도 제대로 개선하지 않았다가 또다시 대형 참사를 빚었다. 노동당국이 사고 4개월여 뒤 공정안전보고서 이행실태를 점검해 과태료 90만원만 물린 것은 감독하는 시늉만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수시는 안전사고 위해 요인을 해마다 100여건씩 적발해 시정지시를 한다. 하지만 면밀하게 점검해 과태료를 물리는 적극적인 조처는 머뭇거린다.
■ 위기관리 지침은 유명무실 이번 대림산업 폭발사고는 여수산단의 허술한 위기대응 체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30m 높이에서 떨어진 부상자를 응급지식이 없는 동료들이 작업용 발판에 뉘어 100여m를 옮겼다. 중화상 환자가 서울의 화상 전문병원에 가는 데 6시간이 넘게 걸렸다. 현장에 있던 노동자 이재석(42)씨는 “구급차나 응급헬기가 곧바로 동원됐다면 동료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여수산단에선 많은 업체들이 구미·화성 등에서 누출됐던 불산(불화수소산)보다 독성이 강한 포스겐 등 유해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독성가스 누출사고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장들은 30여m 간격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차단벽도 없는데다 배관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여수시는 독성가스 누출사고 때 대피 인구를 산단 반경 2㎞ 안 6000명, 반경 4㎞ 안 2만명으로 추산한다. 이들을 사고 1시간 안에 여수시 학동 흥국체육관 등 6곳으로 대피시키는 게 위기대응 지침의 핵심이다. 이정남 여수시 산단안전 팀장은 “미군이 화학탄을 수송할 때 폭발에 대비해 2~2.5㎞를 위험반경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준용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96년 산단 주변 대기에서 벤젠·톨루엔 등 발암물질이 검출되자 이 일대를 대기환경보전 특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산단 2㎞ 안 주민 6000여명을 이주시켰다. 그러나 반경 2~4㎞ 안에는 주민 3831명이 산다.
석유화학산업의 안전 관리는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유해화학물질은 환경부가, 독성 고압가스는 자치단체가, 위험물은 소방당국이 관리한다. 이를 석유화학산업단지 특별법으로 통합하고 환경안전감시센터(재난방제센터)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사회는 주민건강 역학조사 시행, 산단 주변 완충지대 설치, 석유화학 특별세 부과 등도 바라고 있다. 박해욱 플랜트건설노조 위원장은 “독성물질을 마신 노동자가 가면 의사가 처방을 못 하는 황당한 경우도 종종 있다. 국가가 산단 주변에 전문병원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림산업 폭발참사에 지역 시민·환경·노동단체들은 21일 여수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림산업 대표의 형사처벌과 공장 허가 취소 △유해화학물질 사업장 전수조사 △환경·안전 분야 외주 하청 금지 △주민 대표의 안전점검 활동 보장 등 8개항을 요구했다.
여수/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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