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이 너희 꺼냐. X소리 말고 매립기간 준수하라.”
8일 오후 1시 인천 서구 백석동 수도권매립지 정문에 도착한 서울시 출입기자단을 태운 45인승 버스는 손푯말을 든 20여명의 시위대에 막혀 멈춰서야 했다. 붉은 바탕에 하얀색과 노란색으로 쓴 손푯말의 글귀들은 한껏 날이 서 있었다. ‘40만 인천 서구 주민이 봉이냐’, ‘냄새 나는 쓰레기에 우린 병 들어간다’, ‘피를 강요한 자 피로써 보복하리’, ‘남의 집 앞에 X 싸놓고 짖는 개들은 몽둥이가 약이다’.
이들이 손에 든 펼침막엔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위한 인천시민연대’라고 적혀 있었다. 버스 앞에서 아예 대(大)자로 누워버리는 이도 있었다.
잠시 뒤 별도 차량으로 온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인천시경의 정보과 형사, 인천시 대변인을 비롯한 직원들, 인천시의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직원들까지 한 데 모이면서 매립지 정문은 소란스러워졌다. 쓰레기를 실은 덤프트럭과 노선버스 등이 시위대를 지나쳐 오고 갔지만 기자단을 실은 버스는 오도 가도 못했다.
실랑이 끝에 버스는 결국 서울시청으로 방향을 돌렸다. 매립지 정문에 도착 뒤 40여분 만이었다. 이날 현장 설명회를 계획했던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와 대변인실 직원들은 돌아오는 버스에서 연신 “인천시가 치사하게 시위대를 동원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기자들에겐 취재가 성사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수도권매립지 사용 연장 문제를 둘러싼 서울시와 인천시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1992년부터 수도권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매립해온 매립지의 사용 연한이 2016년으로 닥쳐왔기 때문이다. 2017년 이후 매립을 위해서는 제3매립장의 기반공사를 올 상반기 내에 착공해야 하지만, 인천시는 기간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과거 시 외곽 지역이었던 이곳이 검단 신도시, 청라국제지구 등의 개발로 시가지로 바뀌면서 주민들이 악취와 비산먼지, 소음 공해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서울시가 소각장을 늘리거나 대체부지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시는 종량제 등 쓰레기 감량 정책 덕에 매립지 매장량이 애초 계획의 55% 수준에 불과하니 현 매립지 사용 기한을 2044년까지 늘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시가 경인아라뱃길 부지 보상금 1025억원을 인천시에 재투자하고 아시안게임 경기장 건설과 매립지 인근 사극 전용 촬영세트장 조성에도 적극 나서겠다며 달래봤지만, 인천시는 현지 주민들의 고통이 극심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급기야 최근엔 양쪽이 각자의 주장을 담은 전단 수십만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는 등 여론전 양상마저 띠고 있다. 서울시가 출입기자단의 매립지 방문 일정을 잡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갈등이 극심한 만큼 정부가 나서 갈등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훈 서경대학교 교수(행정학)는 “국민의 절반인 2500만명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쓰레기 문제를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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