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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공부와 담쌓았던 말썽쟁이들 ‘꿈’을 배우다

등록 2013-06-02 21:02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혁신학교인 흥덕고등학교에서 지난달 31일 2학년 학생들이 고전문학 수업 시간에 질문지를 만들어 토론하고 있다. 학생들이 4명씩 모둠을 이뤄 서로 마주 앉아 바라보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용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혁신학교인 흥덕고등학교에서 지난달 31일 2학년 학생들이 고전문학 수업 시간에 질문지를 만들어 토론하고 있다. 학생들이 4명씩 모둠을 이뤄 서로 마주 앉아 바라보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용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중학교때 무시당했던 아이들
학기초부터 복도서 담배 피워
교사들 믿어주고 기다리자
학생들 행동 서서히 달라져
봉사활동·인문학 토론 수업
왜 공부해야 하는지 되물어
졸업생들 “후회요? 행복했죠”
흥덕고는 2010년 문을 연 신설 학교였던 탓에 기피 학교였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인 용인시에서 이 학교를 지원한 첫 입학생들은 중학교 내신 성적이 평균 120점대(200점 만점)에 그쳤다.

“학교 분위기요? 장난 아니었죠. 제가 1회 신입생이었는데 중학교 내신 성적이 110점대였어요. 학교도 안 끝났는데 아이들은 그냥 교문을 나가며 담배 피워 물고….” 재학 동안 가출 등으로 ‘흥덕고의 전설’로 꼽혔다는 김준이(20·선문대 경영1)씨는 2010년 막 1학년에 입학했던 무렵을 이렇게 전했다. 옆에서 이소이(20·백석대 관광경영1)씨는 “복도마다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1학년 초에 많이 힘들었다”고 보탰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이 이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해, 학교가 여느 고교와 다른 교육과정을 적용하면서 차츰 학교 분위기가 달라졌다. 교사들도 ‘혁신 교육’에 관심이 있는 이들로 채웠다.

입학식부터 좀 달랐다. 선생님들이 학생들한테 장미 한 송이씩을 쥐여줬다. 이씨는 “중학교 때 성적이 떨어지면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환영은 흥덕고에서 처음 받아본 것 같다. 아직도 입학식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소심했던 이씨는 성격도 활달하게 바뀌었고, 반장도 맡아 친구들을 챙기기도 했다고 했다.

교사들의 믿음과 기다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아이들은 달라져 갔다. 김씨는 1학년 때 한달 넘게 가출했다가 학교에 돌아왔는데 뜻밖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알바’ 하며 놀다가 교문에 들어섰을 때 ‘넌, 잘렸어’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죠. 그런데 이혜규 담임선생님께서 ‘어디 갔다 왔니? 잘 왔다. 열심히 하자’고 하시더군요.” 순간 김씨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정예진(20·남서울대 경영1)씨는 “수업 시간에 잠자면 10차례 넘게 깨워주셨다. ‘공부하라’는 말 대신에 ‘학교에만 나오라’며 도닥여주는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공부할 의욕도 생겼다. 여기 선생님들은 눈빛이 달랐다”고 말했다.

가르치는 내용도 여느 학교와는 달랐다. 1학년 때는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땅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꼈고, 2학년 때 수학여행은 10~15명씩 모둠을 이뤄 다녀왔다. 책 100권 읽기, 백두대간 종주하기, 인문학 토론을 이어가는 ‘흥덕 아카데미’ 등을 학생들이 스스로 주체가 돼 기획하고 참여했다. 수업도 주로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덕분에 공부할 의욕도 자극했다. “친구를 딛고 밟아야 성공하나요? 수학을 좀 잘하는 저는 친구들한테 수학을 가르쳐주는 식으로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어요.” 정씨의 말이다.

중학생 때는 ‘공부와 담을 쌓았다’는 흥덕고 신입생 김민지(17)양은 “중학교 때 수업은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우리는 듣기만 했어요. 그런데 여기 모둠수업에서는 저도 자유롭게 참여해요. 스스로 공부한다는 생각을 처음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김양은 입학한 뒤 어머니한테 ‘네가 웬일로 집에서 공부를 하냐’는 말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올해 흥덕고에 입학한 이대직(17)군도 “학교에 처음 들어오니까 놀랐어요. 모둠수업을 하더라고요.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에요. 공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이런 변화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개교 당시엔 조롱을 받기도 했던 흥덕고는 3년 만에 ‘흥덕 특목고’라는 소문이 날 정도가 됐다. 올해 첫 졸업생 116명 가운데 108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이른바 주요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다. 3년여 전 하이힐을 신고 학교에 오는 학생, 머리 염색한 학생, 담배 냄새로 찌든 학생, 성적 하위권인 학생 등이 많았던 학교에서, 지금은 중학교 내신 성적이 190점대인 성적 우수 학생들까지 지원해 입학하고 있는 것이다.

졸업생 3명에게 흥덕고는 무엇일까? 이소이씨는 “행복했어요. 후회? 진짜 안 해요”라고 했다. 김준이씨는 “제가 ‘인 서울’(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은 못 했지만 크게 만족합니다”라며 웃었다. 정예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걸 배웠어요. 대학에 오니까 친구들은 무슨 일 하나를 해도 우왕좌왕해요. 난 그러지 않아요.” 용인/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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