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 임대주택 건립, 공공 대학생 기숙사 건축이 주변 주민들의 반발에 맞닥뜨렸다. 서민들, 비싼 등록금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뒷받침하겠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도가 주민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
|
|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임기 안에 공공 임대주택 20만가구를 짓겠다며 출범 초기부터 ‘행복주택’ 건설에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4월 임대주택 8만가구 건설 정책을 내놓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거 복지 수준이 매우 낮은 까닭이다. 그런데 공공 임대주택을 혐오시설처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반값 등록금을 호소하는 대학생들을 뒷받침하는 공공 기숙사 건축 사업도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반발에 맞닥뜨렸다.
■ 공공 임대주택·기숙사는 싫다? “대학재단 면죄부 주는 기숙사 건설, 서울시민 혈세 1200억 사용 반대.” 지난달 23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ㅎ아파트(444가구) 벽면에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아파트 건너편 한강 옆 유수지(홍수 때 빗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곳) 터에 공공 기숙사 짓는 걸 반대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1만여㎡인 유수지를 깊게 파 물을 담을 수 있도록 하고, 그 위에 20층 700실 규모의 대학생 기숙사를 세우려 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도 유수지 확충 280억원, 기숙사 신축 380억원 등 예산 660억원을 통과시킨 상태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난 김아무개(61·여)씨는 “유수지는 주민들이 산책도 하는 공원이다. 그냥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정아무개씨는 “기숙사까지 들어서면 한강변 아파트가 아니라 동굴 아파트가 된다. 조망권 침해로 가구당 몇 억원씩 피해를 입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30년 된 아파트의 재건축을 바라고 있다. 김아무개(40)씨는 “재개발을 뒤로 미루고 기숙사부터 짓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 시민들이 낸 세금을 왜 지방 출신 학생들에게 쓰려고 하나”라고 했다.
기숙사 건립 계획을 서울시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서울시는 주민 대표 몇 명과 간담회를 했지만 그나마 주민들의 항의에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 사업도 주민들 반대가 시작됐다. 국토교통부가 행복주택 시범지구 후보지로 유수지 3곳(서울 양천구 목동, 송파구 잠실·탄천)과 철도부지 4곳(서울 오류동역, 가좌역, 공릉동 경춘선 폐선부지, 경기 안산시 고잔역) 등 7곳(48만9000㎡)을 지정하자, 목동 주민 등은 과밀화, 녹지 감소를 들어 반대 서명운동에 나섰다.
광진구 구의동 ㅎ아파트 주민 가운데 대학생 기숙사 건립에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아무개씨는 “학비 부담에 힘겨워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일이다. 약간만 불안해도 집값 떨어질까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부근에서 가게를 하는 아파트 주민 박아무개씨는 “기숙사를 지어 젊은 대학생들이 많아지면 동네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에게 주거 문제는 절실하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자료를 보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의 기숙사 수용률은 11.67%에 불과하다. 지역 출신 대학생 10명 가운데 8~9명은 자취나 하숙을 하거나 고시원 등에서 지내는 셈이다. 배병우 서울시립대 교수팀이 서울시립대·경희대 학생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대학생들은 월평균 소득 79만6700원(부모 지원금 63만여원 포함) 가운데 40%에 이르는 31만7700원을 주거비로 지출했다. 전세 보증금을 뺀 수치다. 그만큼 공공 기숙사 확충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공사가 대학생을 위해 지은 원룸주택 ‘희망하우징’의 모습. 건물 1층 북카페 ‘산책’을 찾은 주민들은 “처음엔 대학생 임대주택에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는데, 카페도 이용할 수 있고 젊은 대학생들도 오가고 해서 좋다”고 말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공존의 싹 틔운 ‘희망하우징’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엔 젊은이들의 ‘둥지’가 있다. 대학생들을 위한 5층 원룸 건물로, 지난해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SH)공사가 지었다. 지난 3월 대학생 29명이 입주했는데, 경쟁률이 5.9 대 1이었다. 13.44㎡ 크기의 원룸 이용료는 보증금 100만원에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는 월 13만여원, 비수급자 자녀는 16만원이다. 둥지는 서울시가 공공 기숙사 건립과 함께 벌이는 대학생 전용 임대주택 ‘희망하우징’ 사업의 결과물이다.
강서구 내발산동에는 ‘희망둥지 대학생 공공 기숙사’(연면적 9283㎡)가 신축중이다. 서울시가 터를 제공하고, 전남 나주·순천·광양·고흥, 충남 태안, 경북 경산·김천·문경·예천 등 9개 시·군이 건축비를 분담하는 방식이다.
연남동 희망하우징 사업도 입지가 단독주택·빌라가 많은 주택가 한복판이다 보니 처음엔 소음 피해 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입주한 지 석달이 돼가던 지난달 23일 주변 분위기는 달라 보였다.
건물 1층에 만든 북카페 ‘산책’을 찾는 주민이 늘었다. 북카페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던 주민 정성이(33)씨는 “대학생 원룸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솔직히 뜨내기들이 많아질까 걱정했다. 막상 공공 원룸이 들어서니 동네가 깨끗해졌고, 가까운 곳에 북카페도 생겨 좋다”며 웃었다. 어린 딸과 함께 북카페를 찾은 조혜경(40)씨는 “커피값이 다른 곳보다 30~40% 싸고, 집 앞에 있으니 편안한 옷차림으로도 올 수 있다. 2~3일에 한 차례씩 아이 손 잡고 들른다”고 말했다. 북카페의 사서 겸 바리스타는 “주민들이 알음알음 꾸준히 찾아온다. 주민 복지 차원에서 주민 대상의 문화강좌도 운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29명이 머무는 작은 규모이지만, 동네 문화시설도 들어서면서 주민들과 대학생들은 차츰 어우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주민 반발 해법은
입주 저소득층 자활·마을공동체 사업 병행해야
우리나라 공공 임대주택의 비중은 5.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고 회원국 평균인 11.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네덜란드(35%), 오스트리아(25%), 덴마크(21%), 스웨덴(20%), 영국(18%), 프랑스(17%)에 견주기조차 어렵다.
서울시가 공공 청사를 고치거나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을 도입하는 등 갖은 방안을 내놓았다. 예산이 한정돼 있으니, 공영주차장과 유수지, 자투리땅까지 활용하고 있다. 쪽방 거주자를 위해 고가도로 아래에 컨테이너박스를 활용한 1인가구용 ‘모듈러 주택’도 제공하고 있다. 광진구 구의동 유수지에 대학생 공공 기숙사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토지 매입비 부담이 엄청난 때문이다.
그런데 주민들의 반발로 공공 임대주택 사업은 순탄치 않은 형국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임대아파트 단지에는 복지관을 재건축해 1~5층을 복지관으로, 6~15층에 임대주택 80가구를 짓는 계획을 세웠으나, 주민 반발로 설계작업이 중단됐다. 강서구는 “강서구엔 이미 임대주택이 많다. 지역 슬럼화가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들도 팔짱만 끼고 있다.
같은 가양동의 시유지 주차장에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을 지으려는 계획도 “공립 유치원을 지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부닥쳤다. 양천구 신정동, 도봉구 창동, 송파구 거여동에 건립하려던 장기전세주택 공급 계획도 주민들의 반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의 거부감에는 경험적인 이유가 있다. 대규모 임대주택에 저소득층이 몰리며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고 기피 현상을 부르며 집값·땅값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서채란 변호사는 “임대주택 주민들의 자활과 재활을 뒷받침해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임대주택 중심으로 펼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주민들, 자치구와의 사전 협의를 강조했다. 입지 선정 때부터 주민들과 협의하고, 자치구에도 임대주택 건립에 따른 복지예산 부담 가중을 줄여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임대주택 규모가 작을수록 지역 주민과 공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대규모 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사업과 관련해 김은희 도시연대 사무처장은 “임대주택 주민들과 주변 주민들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행정의 역점을 둬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