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일광면의 대안 전시공간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거주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작가들이 설치미술 작가 임다운씨 작업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쉬샤오궈(36·중국), 후이와이컹(40·홍콩), 임다운, 한강(35), 안은비(28), 뤄웨이(33·중국).
향토기업가 무상대여한 농장
국내외 작가들 작업공간 변신
비용 걱정없이 작품활동 몰두
신인작가에 전시기회도 제공
국내외 작가들 작업공간 변신
비용 걱정없이 작품활동 몰두
신인작가에 전시기회도 제공
지난달 18일 부산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의 한 산기슭 오솔길을 따라가니 ‘오픈스페이스 배’(열린공간 배)라고 적힌 작은 펼침막이 보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소와 돼지 등을 기르던 축사 건물 2채가 나왔다. 바깥과 달리 건물 안은 깔끔했다. 한 채는 사무실로, 다른 한 채는 전시관으로 쓰였는데, 70㎡ 남짓한 공간에 대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설치미술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5분가량 더 걸어가니 작업 공간으로 쓰이는 건물 5채가 나왔다. 이곳에선 미술작가 6명이 30㎡ 남짓한 각자의 방에서 창작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설치미술 작가 임다운(27)씨는 “같은 미술인들과 함께 예술활동을 하고, 선배 미술작가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 더욱이 전시회도 열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라며 웃었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2006년 8월 부산의 미술인들이 ‘대안 미술 공간’을 내걸며 만들었다. 대표 서상호(45)씨의 친구인 부산의 향토기업가가 개인 농장과 산 등 13만여㎡를 지역 예술인촌으로 거저 사용할 것을 허락했다. 서 대표 등은 지인들한테서 약간씩 금품 기부를 받아 축사로 사용되던 2채를 전시관과 사무실로 꾸몄다.
또 다른 건물 5채는 농장 주인한테 다달이 50만원을 주고 빌렸다. 뜻있는 미술인들이 여러 달 동안 힘을 모아 미술작업을 할 수 있는 숙소 10여곳과 공동주방으로 개조했다. 이곳에는 해마다 공모 또는 추천으로 뽑힌 10여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숙식비와 방값을 내지 않고 1~6개월씩 머물면서 다달이 30만원씩 지원받는다.
이곳에 상주하면 48시간 이상 외출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하고 돌아가면서 식사준비와 설거지를 맡는 등 생활규칙이 엄격한데도 해마다 지원자가 정원을 넘는다. 지난 7년 동안 이곳을 거쳐간 미술작가들은 60~70여명에 이른다. 서양화가 한강(35)씨는 “새로운 환경에서 작가들과 다양한 생각을 교류하면 작품 활동 의욕도 솟고 영감도 잘 떠오른다”고 말했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또 신인 또는 무명 작가들에게 해마다 10차례 전시 기회를 주고 있다. 전시 공간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작품 설치를 도와준다. 이들이 전문 미술전시관에서 개인전을 열려면 몇십만에서 몇백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 사정을 배려한 것이다. 비영리단체인 오픈스페이스 배는 별도의 수익사업 없이 해마다 자치단체와 문화재단의 공모사업에 응모해 당선되면 나오는 지원금으로 8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상호 대표는 “당장 사용하지 않는 농장을 개조해 필요한 이들한테 공간을 나누는 것에 국적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곳을 이용한 무명의 작가들이 유명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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