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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이주민 ‘두 동강’…소송으로 얼룩진 ‘소매물도’

등록 2013-07-14 21:04수정 2013-07-14 21:51

경남 통영시 한산면 소매물도 전경. 임야 사이 좁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과 펜션업을 하는 외지인들이 다투고 있다. 경남도 제공
경남 통영시 한산면 소매물도 전경. 임야 사이 좁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과 펜션업을 하는 외지인들이 다투고 있다. 경남도 제공
[영남 쏙] 통영의 자랑 ‘소매물도’ 관광개발 갈등
남해의 보석 같은 섬 소매물도. 100년 넘게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살던 이 섬에 ‘고소·고발의 섬’이라는 딱지가 최근 붙어다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 방법은 없을까?

경남 통영시 서호동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1시간20분가량 파도를 안고 남쪽으로 26㎞가량 달리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끝자락인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소매물도에 도착한다. 이곳은 매물도에 딸린 조그만 섬일 뿐이지만, 낚시꾼 등 연간 60여만명이 찾을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소매물도에서 걸어갈 수 있는 등대섬이 최근 광고와 영화에 잇따라 등장하면서 관광객이 폭증하는 추세다. 올해엔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최근 ‘고소·고발의 섬’이라는 별칭이 소매물도에 생겼다. 지난 한 해에만 56건 등 3년간 고소·고발과 신고·민원이 100건 넘게 발생했다. 건수가 워낙 많아 통영시, 통영경찰서, 통영해양경찰서, 창원지검 통영지청, 창원지법 통영지원 등은 물론 당사자들조차 정확히 몇 건인지 파악조차 못한다. 분명한 것은 소매물도에 고소·고발과 관련되지 않은 집이 단 한 집도 없다는 것이다. 15건에 얽힌 이도 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섬 소매물도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 섬 전체가 팔릴 뻔 갈등의 뿌리는 198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소매물도엔 36가구가 옹기종기 살았다. 젊은이들은 뭍으로 나갔다. 가장 젊은 사람이 50대 중반일 만큼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업은 해산물 채취·판매였다. 할머니들은 평생을 해녀로 살았고, 할아버지들은 해녀인 부인을 도우며 살았다. 친인척인 주민들은 소매물도의 모든 땅과 건물을 공동소유했다. 여객선이 다니기 전이라 섬을 찾는 외지인은 드물었다. 공동소유한 땅을 팔려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

한적한 섬마을에 1989년 ㈜남해레데코라는 업체가 들어왔다. 섬을 몽땅 사들여 대규모 자연관광단지를 만들겠다고 했다. ‘계약자 당대에는 그대로 살아도 된다’는 조건에 주민들은 땅과 집을 남해레데코에 팔았다. 소매물도 섬을 통째로 넘긴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이 매매계약에 반대했다. 현재 소매물도 어촌계장인 김정현(49)씨다. “군대를 제대해 집에 왔더니 한글도 읽지 못하는 어머니가 땅과 집을 팔기로 하고 계약금으로 200만원을 받았다며, 돈을 내밀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100년도 넘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그것도 섬 전체를 팔아넘기다니요. 200만원을 더 보태, 해약금으로 400만원을 주고 계약을 깼습니다.” 이때부터 김씨와 남해레데코의 악연이 시작됐다.

소매물도의 도로를 막은 쓰레기 더미. 원주민들과 외지인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처럼 쓰레기로 길을 막아 통행에 지장을 주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이석재씨 제공
소매물도의 도로를 막은 쓰레기 더미. 원주민들과 외지인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처럼 쓰레기로 길을 막아 통행에 지장을 주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이석재씨 제공

■ 두 동강 난 섬 소매물도가 광고·영화에 나오면서 유명해지고 2000년대 초반부터 정기 여객선도 다니면서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섬 전체를 사들이는 데 실패하자 남해레데코의 자연관광단지 조성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2005년 남해레데코의 경영권은 수도권에서 건축업을 하던 차영복(53) 현 남해레데코 공동대표에게로 넘어갔다. 차 대표는 “다이빙과 스킨스쿠버를 좋아해서 예전부터 소매물도에 가끔씩 들렀고, 경치 좋은 곳에 땅을 구입해 별장을 지으려 했다. 그 과정에 남해레데코와 발생한 금전적 문제를 처리하면서 뜻하지 않게 남해레데코를 인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차 대표는 인수 직후 펜션과 식당을 지었다. 차 대표가 운영하는 3곳을 포함해 5곳의 펜션이 영업중이다.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펜션이 잇따라 문을 열었지만, 땅도 집도 모두 팔아넘긴 주민들은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어촌계장 김씨는 “소매물도는 사실상 남해레데코의 식민지였다. 부모 세대가 돌아가시면, 원주민들은 섬에서 쫓겨날 형편이었다”고 말했다.

차 대표와 어촌계장 김씨는 섬 전체 땅이 92 대 8로 나뉜 자신들의 지분을 명확히 가르기 위해 소송을 벌였다. 공동소유여서 토지 서류에 지분 비율만 있을 뿐 개인별 땅 위치는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에 실패하자 법원은 경매로 땅을 처분해 지분만큼 돈을 나눠 갖도록 결정했다.

개발업체, 24년전 섬 통째 매입
관광단지로 개발하려다가
“조상땅 못판다” 일부 원주민과 갈등

경매서 임야 절반 원주민 손으로
식수·전기·도로 이용 등 문제
펜션운영 이주민과 갈등 증폭
최근 3년 고소·고발·민원 100여건
통영시 중재도 무산…해결 ‘미궁’

하지만 2010년 12월27일 경매는 예상 못한 결과를 낳았다. 김씨가 주민 3명과 공동으로 경매에 참여해 전체 임야의 절반가량인 22만6882㎡를 10억5500만원에 낙찰받은 것이다. 결국 섬 전체 임야의 소유권은 김씨 등 주민 4명이 소유한 한산면 매죽리 산64-1번지와 ㈜남해레데코가 소유한 23만182㎡의 산63-1번지로 두 동강 났다. 주민들은 둘로 나뉜 임야 사이 좁다란 골짜기에 마을을 이뤄 산다.

김씨 등이 경매에서 땅을 사들이자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뭍에 나가 살다 2008년 귀향한 이석재(35)씨가 2011년 1월1일 마을 이장을 맡으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본격적으로 터져나왔다.

소매물도에 주민등록한 주민은 28가구 58명인데, 학교나 직장 때문에 뭍에 나간 사람이 많아 실제 거주자는 14가구 34명이다. 원주민 9가구 19명, 펜션을 운영하는 이주민 5가구 15명이다.

■ 사소한 다툼도 고소로 원주민들은 빗물을 물탱크 2개에 모아두고 지하수도 퍼올려 식수를 충당해왔다. 펜션이 들어서 식수 사용량은 급격히 늘었고 물탱크가 자주 바닥을 드러냈다. 화가 난 원주민이 물탱크 밸브를 부수자 펜션 쪽이 그를 고소했다.

주민들이 쓰는 전력은 발전기로 생산하는데, 차 대표가 운영하는 펜션의 직원이 관리한다. 직원이 발전기 기름을 쏟아 바다를 오염시키자, 원주민 쪽이 해경에 신고했다. 차 대표의 펜션이 ‘전기를 훔쳐 쓰고 있다’며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200여만원의 벌금을 물었던 펜션 쪽은 ‘무허가 영업을 한다’며 마을 해녀들을 고발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차 대표 쪽 식당이 폭 1m, 길이 5m 남의 땅을 침범한 사실이 드러나자 주민 쪽이 고소했고, 그 식당 앞에 주민 쪽이 담장을 쌓자 차 대표 쪽이 고소했다.

도로에 말뚝을 박아 가로막으면, 굴착기나 쓰레기 등으로 길을 막아 맞섰다. 2년 남짓 주고받기식으로 맞서면서 사소한 마찰까지도 고소·고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화해 시도가 없지 않았다. 통영시가 몇 차례 중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지난해 말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이 따로 마을회의를 열어 각각 이장을 선출했다. 우지연 한산면장은 지난 2월 5명씩을 면사무소로 불러 “과거 잘못은 모두 내려놓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서로를 이해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공식적으로 소매물도의 이장은 공석이다.

차영복 대표는 지난달 21일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서 <한겨레>와 만나 “법원에 불려다니는 것도 이제 지쳤다. 합의하고 싶다. 재판 끝나면 다 팔고 섬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어촌계장과 이장이 공개적으로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재 이장은 “차 대표가 소매물도를 자신의 왕국처럼 여기고 원주민들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 싸움이다. 이것부터 반성하고 주민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현 어촌계장은 “내 땅을 주민에게 나눠줘서라도 끝까지 우리 섬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소매물도 주민들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반목과 불신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원주민은 원주민대로, 외지인은 외지인대로 관광객들하고만 대화할 뿐 서로는 말을 건네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관광객들에겐 ‘빛과 바람의 섬’인 소매물도가 주민에겐 ‘침묵의 섬’이다.

우지연 한산면장은 “지난 2월 양쪽에 마을규약 만들기를 제안했다. 마을총회 등을 열어 의견을 조정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서로 화해할 길을 찾기를 바란다. 행정도 중재에 힘써보겠다”고 말했다.

통영/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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