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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쏙] 도시 노숙인들 ‘귀농자활’
1만명이 넘는 거리의 노숙인은 누구인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이며, 아들이며 딸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도시를 떠나 강원도와 경기도의 농촌으로 갔다. 귀농 노숙인들은 도시의 공짜 밥이 아니라 농촌의 구슬땀을 선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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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재주 좋다. 장가가게 됐으니, 너 성공했다.”
유일한 홍일점 노숙인인 최아무개(61)씨의 말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내가 30대면 시집 한번 더 갔을 거야.” 선배 노숙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주인공은 총각 노숙인 변병구(41)씨다.
변씨가 강원도 산골마을에 온 것은 두 달 전쯤이었다. 밭에 비닐을 깔고 모종을 나르고 농약을 치는 등 닥치는 대로 농사일을 했다. 아침 6시 눈뜨자마자 일을 나갔다가 오후 6시에는 사글세방으로 돌아와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다. 귀농 초기에 품삯 모으는 재미밖에 없던 그에게 옆방의 또래 타이 여성은 ‘천사’였다.
7년 전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타이 여성도 도시를 거쳐 이곳으로 왔다. 시골 출신이었고, 농촌에서는 일한 만큼 일당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어서였다고 했다. 품삯을 챙겨 타이에 있는 두 동생을 결혼시킬 만큼 생활력도 강했다. 일이 서툰 변씨에게는 선배 농사꾼인 그녀는 밥도 챙겨주고 일의 요령도 일러줬다. 도시의 밑바닥을 떠돌던 변씨는 “이곳에 와서 가족이라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변씨는 7살 때 아버지가 숨지고 어머니도 가출했다. 형제 4명은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모른다. 친척 집에 맡겨진 변씨는 고교를 겨우 마치고 혈혈단신으로 상경했다. 공장에서, 용역업체에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지만, 결국 신용불량자로 내몰린 뒤 노숙인으로 나앉았다.
서울과 경기도 수원역 일대를 오가며 떠돌기를 5~6년.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귀농 자활은 나락으로 밀려난 그에게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수원역 앞 성공회 산하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한달 동안 인문학 교육을 받고 귀농 자활에 나선 것이다.
강원도 농촌 마을에서 농가 일손을 돕고 하루 품삯 8만~9만원을 받는다. 노숙인들의 귀농 정착지원사업은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가 노숙인들의 귀농을 안내하고, 경기도가 초기 2개월 동안 한달 주거비·식비 120만원을 지원하는 노숙인 사회복귀 프로그램이다. 두 달간 지원이 끝나면 노숙인은 홀로 자립해야 한다. 귀농 자활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숙인들이 일손 부족을 겪는 농촌의 일을 도우면서 자존감도 회복하고 품삯으로 자활 자금도 마련하자는 취지로 2011년 도입했다.
귀농 자활에 나선 노숙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지난 2일 강원도 산골식당에 변씨를 비롯한 귀농 노숙인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정착한 여성 노숙인 최씨는 “여기서 두 달만 일하면 기반을 마련한다. 나는 노후자금으로 2500만원 벌 때까지는 안 나간다”고 말했다. 도시 노숙생활 5년을 접고 지난 6월 이곳에 온 노숙인 김아무개(47)씨는 “공기도 좋고 살 만하다. 무엇보다 일하게 돼 기쁘다. 공짜 밥이 아니니 더 좋다”고 했다. 두 달간 100만원을 저축했다는 김씨는 “여기서 살고 싶다. 내겐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최고참 신아무개(63)씨는 귀농 3년차 프로 농사꾼이다. 그는 승합차를 사서 일꾼들을 실어나르는 ‘투잡’을 할 만큼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귀농 자활이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첫해인 2011년엔 참가자 12명 가운데 2명만이, 지난해엔 6명 가운데 3명만이 농촌 정착에 이르렀다. 상당수가 더 못 견딘 채 노숙인으로 되돌아갔다. 참패였다.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 최승회 사회복지사는 “장기간 몸에 밴 노숙 생활방식을 벗기가 쉽지 않다. 단순 귀농 안내에 그친 사업 초기의 허술한 지원도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귀농 자활에 나섰지만 노숙인들은 불안감도 남아 있다고 했다. 귀농 노숙인 박아무개(57)씨는 “올해엔 유독 장마가 길어 일을 못 하고 공친 날이 많다”고 말했다. 농촌에선 일손이 귀하다 보니 도시 일용직보다는 하루 품삯이 1만~2만원은 높다. 그런데 비가 오면 일이 끊긴다.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는 특성에 일감이 연중 내내 있는 것도 아니다. 두 달 지원이 끝날 시점이 다가올수록 이들의 불안감도 커진다. 노숙인 이아무개(46)씨는 “10만~30만원의 월세도 못 내면 다시 노숙하는 거지”라고 털어놨다.
올해는 귀농 자활 희망자 7명 가운데 5명이 정착할 만큼 점차 성공률도 높아지고 있다. 귀농 현장을 둘러본 이영하 경기도 복지정책과장은 “자활 의지가 강하다. 이들이 최소한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 김대술 신부는 “인문학 교육이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다. 좌절한 노숙인들이 의지와 자신감을 되살리고 귀농 자활 의지를 갖게 하는 데 인문학 교육이 효과가 있다. 인문학 교육 시간도 더 늘리고 자활 의지도 더 꼼꼼히 챙긴다. 귀농 정착에 성공한 선배 노숙인들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구/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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