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 이천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보치아 훈련에 나선 정소영 선수가 신중하게 공을 던지고 있다. 이천/전진식 기자
[지역 쏙] 충남 장애인 보치아 실업팀
여자양궁 못지않게 세계 최강인 보치아 종목에 첫 실업팀이 생겼다. 국내에 도입된 지 26년 된 중증장애인들의 스포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에게 놀라움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충남도 보치아 실업팀 선수들을 만나봤다. 보치아 선수 김명수(29)씨는 어릴 때 외로웠다. 갓난아이 때 황달을 앓은 뒤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어려서 수녀님한테서 자랐어요.” 부모와 떨어져 김 선수는 충북 충주 숭덕학교에서 초·중·고 과정을 마쳤다. 숭덕학교는 뇌병변·척수 장애 등이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보치아 공을 쥐었다. “보치아를 시작한 지 올해 18년째인데 시간만 오래됐어요. 시합 나가면 매번 예선에서 탈락하니 ‘내 길이 아닌가 보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그는 자신을 프로야구 초창기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에 견줬다. “날마다 지니까 제가 패전 처리 전문투수 감사용 같았어요.” 그래도 보치아가 좋아서 묵묵히 훈련을 거듭한 끝에 김 선수는 21살 때 처음으로 전국대회 개인전에서 우승을 했다. 2009년에는 마침내 국가대표가 되어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지금도 경기가 잘 안되면 나 자신한테 화가 나요. 그걸 빨리 잊어야 하는데….” 지난 8일 경기도 이천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 보치아 국가대표 선수 11명이 저마다 손에 275g짜리 공을 쥐고 씨름하고 있었다. 큰 소리나 격렬한 몸짓을 듣거나 볼 수 없다. 빨간색 또는 파란색 공을 쥐고 바닥에 놓인 흰색 공을 응시하다 팔을 뻗어 던지거나 굴린다. 공을 쥐어보니 초등학교 운동회 때 던졌던 콩이나 모래를 넣은 헝겊 주머니처럼 폭신한 느낌이 든다. 공을 또르르 굴려보니 흰색 공에 찰싹 붙는다. 엄지손가락이 올라간다. “오케이, 좋아!” 오는 10월 아시아·오세아니아 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은 지난달 11일부터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 날마다 적게는 500번, 많게는 1000번씩 공을 던진다. 이들 국가대표 가운데 조금은 특별한 선수들이 있다. 김명수·정소영(26)·최예진(23)·김성규(44) 선수는 지난 7일 창단한 ‘충청남도 보치아 실업팀’ 소속이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며 월급은 국내외 성적 등을 따져 등급별로 180만~240만원이다. 이용진(24) 선수는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유망한 신인 선수로 팀에 합류했다. 국내에서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보치아 실업팀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1987년 서울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보치아가 도입된 뒤 무려 26년 만이다. 그동안에는 실업팀이 없었기 때문에 고교생 때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졸업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은퇴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치아 선수들에게는 시합 때는 물론 훈련장에서도 반드시 경기 보조인이 필요하다. 재학중에는 체육 교사가 도와줄 수 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조차 불가능해지는 게 국내 보치아 선수들의 현실이다. 신중식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부회장은 지난 7일 창단식에서 “실업팀 창단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오늘은 뇌성마비 장애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다”라며 감격해했다.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에 등록된 국내 보치아 인구는 500여명에 이른다. 누구보다 선수단의 기쁨이 제일 큰 듯했다. 충남도 보치아 실업팀 초대 사령탑을 맡은 임광택(38) 현 국가대표 감독은 정말 꿈만 같다고 했다. “장애인 스포츠 관계자들이 다 놀라고 있어요.” 중증장애인인 보치아 선수들에게는 경기장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씻고 먹고 잠자는 것은 물론 경기 뒤 땀에 흠뻑 젖은 운동복도 지도자들이 빨아줘야 한다. 임 감독은 “국제대회 나가면 빨래하는 게 일이었다”고 했다. 모두들 전동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이동할 때도 리프트가 장착된 특수차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보치아는 장애인 체육 중에서도 특수종목이에요.” 현실이 이렇다 보니, 충남도 실업팀 창단은 한여름 폭염에 옥수수수염처럼 축 늘어진 임 감독의 어깨에 불끈 힘을 넣는 소식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보치아 도입 26년
세계 처음으로 실업팀 창단
체육회·도비 지원받아 든든 학교 졸업뒤 막막했던 선수들
“너무 행복해” 자립의 꿈 쑥쑥
이번달 첫 월급에 부푼 명수씨
“부모님 선물 뭘로 사야 하죠?” 실업팀 창단의 첫 단추는 지난 1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실업팀 창단 공모를 하면서 끼워졌다. 충남도가 도내 공모를 거쳐 보치
아팀을 신청해 선정되면서 창단 준비가 급물살을 탔다. 실업팀은 올해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해마다 1억원씩 대한장애인체육회로부터 지원받게 됐다. 여기에 충남도가 올해 예산 9400여만원을 포함해 연간 1억~2억원을 보탤 참이다. 도는 이번 실업팀 창단이 시·군에도 팀을 꾸릴 수 있는 밑거름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동혁 충남도장애인체육회 전문체육팀장은 “그동안에는 실업팀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별로 동호회에서 팀을 꾸려 대회에 참가해왔다. 충남도 실업팀은 천안 장애인종합체육관을 훈련장으로 쓰게 된다”고 말했다.
늘 밝게 웃는 정소영 선수는 실업팀 선수가 되면서 얼굴빛이 더욱 환해졌다. 단정하게 뒤로 땋아 내린 머리가 예쁜 정 선수는 부산에서 중학교 2학년 때 보치아를 시작했다. 석달 배우고 난 뒤 출전한 학생대회에서 덜컥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제가 몸이 많이 떨리는 편인데, 학교 체육 선생님이 보치아가 저한테 잘 맞을 거라고 하셔서 하게 됐어요.” 정 선수는 보치아를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원래는 내성적이었는데 운동하면서 더 밝고 활발해졌어요.” 지난해 영국 런던장애인올림픽에서 2등급(BC2) 개인전 동메달을 딴 그는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장애인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뇌성마비다 보니 몸이 흔들리는 선수도 있고 뻗대는 선수도 있어요. 몸에도 집중하고 공 놓는 것에도 집중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공이 퍼져 점수가 낮거든요. 그래서 경기 때나 연습 때나 초집중을 해요.”
지난해 런던장애인올림픽 3등급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최예진 선수는 ‘보치아 선수 출신 박사 1호’가 꿈이다. 천안 나사렛대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하는 최 선수는 학업과 운동 둘 모두에서 최고를 꿈꾸고 있다. 어머니 문우영(52)씨가 실업팀 주무이자 국가대표팀 코치인 것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문씨는 “서울이 집인데 대학을 오가는 게 힘들어 아예 천안에 방을 얻어놓고 지낸다”고 말했다. 실업팀 주장 김성규 선수는 동료들 가운데 보치아를 가장 늦게 시작했다. 배드민턴이나 볼링 종목으로도 전국체전에 출전했는데 보치아가 자신에게 딱 맞았다고 한다. 온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는 근이양증이 있는 그에게는 무거운 공을 쓰는 볼링보다 보치아가 맞춤인 셈이다. “실업팀 창단요? 좋아하는 운동을 직장 생활로 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행복해요.”
실업팀 창단은 선수들이 저마다 삶을 스스로 일궈가는 데 절실한 밑돌 하나를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중증장애인에게 직장 생활은 그야말로 먼 나라 얘기로 여겨지곤 했지만, 이제는 또렷한 현실이 된 것이다. 복지시설에서 지내거나 집에서 머무는 게 하루 일과인 이들에게 직업은 생계 유지를 넘어 자신의 삶을 보치아 공처럼 움켜쥘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게 장애인단체 쪽의 한목소리다. 실업팀 창단 실무를 맡은 박노철 충남도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은 창단식에서 “이제 월급으로 멋진 옷도 사서 입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집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체육 활동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의 문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경제활동을 보장하며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인 사회 전반을 바꾸는 데 충남도 실업팀이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돌덩이 같은 얼굴로 공을 연신 던지는 김명수 선수에게 다가가 월급 얘기를 슬쩍 꺼냈다. 그러자 잘 익은 복숭아처럼 금세 환하게 웃는다. “부모님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한여름이라서 내복은 좀 그렇고요. 지금도 고민중이에요.” 충남도 보치아 실업팀 선수 5명은 이달 25일 생애 첫 월급을 손에 쥔다.
이천/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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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 지난 5일 모인 충남도 보치아 실업팀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명수 선수, 문우영 주무, 정소영·최예진 선수, 임광택 감독, 김성규 선수. 충남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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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보치아 실업팀 최예진 선수 등이 지난해 8월 런던장애인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경기 이천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훈련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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