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말의 낮은 지붕들이 30일 주변 아파트들과 대형 공장 벽 사이에 엎드려 있다.
주거 안정과 공동체 실현을 꾀하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이 마을에 지난 6월 들어선 희망키움터의 노인공동작업장에서 어르신들이 볼펜 조립 일을 하고 있다.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무허가 판잣집 밀어 버리는 대신
405가구 터전지키는 ‘보전형 개발’ 희망키움터는 인천의 대표적 도시빈민촌인 괭이부리말이 주거 안정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안모델 실험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완공한 4층 건물이다. 지난 6월 문을 연 희망키움터는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현대식 건물이다. 노인공동작업장(3층) 말고도 북카페(1층), 지역자활센터(2층)와 4층에 헬스장 등 주민편의시설과 쪽방상담소가 입주했다. 희망키움터 옥상에서 내려다본 괭이부리말은 높은 아파트들과 굴착기 등 기계를 생산하는 몸집 큰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에 에워싸인 섬 같았다. 좁은 마을 골목길은 한 사람 지나기도 버거웠고, 이웃의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었다. 한낮인데도 골목은 어둑어둑했다. “식구가 늘 때마다 지붕 위에 판자로 얼기설기 지어 한층씩 올려 3층까지 올라간 집이 많아. 그러면서도 이웃끼리 정답게 살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떠나 빈집들이 많아.” 주민 김아무개(85)씨는 아쉬워했다. 2만여㎡(약 6000평) 괭이부리말에 있는 건물 338개동의 68%인 229개동이 무허가 건물이다. 한곳의 면적이 16.5~19.8㎡(5~6평)이다. 이곳에 사는 405가구 767명 가운데 상당수가 60~70대 이상이다. 비가 많이 내리면 무너지는 집이 있을 정도다. 4층 높이 임대주택 신축 공사장 앞 골목길에서 만난 이음전(85)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녀. 남은 여생을 화장실 있는 집에서 사는 게 소원이야”라고 하소연했다. 화장실 있는 주택은 30%도 안 된다. 나머지는 공동화장실을 이용한다.
임대주택 짓고 낡은 집은 보수작업
신축 공동작업장은 일터이자 쉼터 1987년부터 이 마을에서 공부방을 운영해온 김중미 작가는 “원주민들이 100% 정착하는 현지개량 방식에 동의했지만, 추진과정에서 관료주의 등 때문에 주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보여주기식 방식으로 흘렀다”고 비판했다.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다만 한 블록에 따로 임대주택을 짓는 방식은 나머지 주민들과의 화합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 보완 요구도 이어졌다. 마을에 있는 인천쪽방상담소의 박종숙 소장은 “주민들의 재정착을 위해선 더 많은 소득사업을 창출하고, 임대주택 입주 요건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인천주거복지센터가 만석동에서 운영하는 행복주거문화센터 관계자는 “주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주거환경 개선이다. 무허가 건물이 매우 낙후됐는데도 행정 당국이 관련 규정을 들어 지원할 방법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 민간단체, 기업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지원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괭이부리말 마을지역협의체 대표를 지낸 박종열 목사는 “주민들 스스로 주택 개량 방안을 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인천시와 동구도 고심하는 것으로 안다. 올해 말이면 바람직한 쪽으로 윤곽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천/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개항 이후 현재까지 서민들의 삶의 터전 괭이부리말의 역사 ‘괭이부리말’은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괭이부리말은 인천 동구 만석동 앞바다 묘도(고양이섬)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고, 이 지역에 많았다는 괭이부리갈매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괭이부리말은 1880년대 초까지 조선인 20~30가구가 사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1882년 일본과 맺은 제물포 조약 이후 일본인 사업가가 1905년 갯벌 약 50만㎡를 매립한 뒤 원래 살던 조선인들을 몰아내고 해수탕·고급 음식점 등 위락시설을 조성하고 기업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동양방적이, 1937년 광산용 기계 생산업체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가 들어섰다. 일제는 2차대전 때인 1943년 조선기계제작소에 잠수함 건조 명령을 내렸다. 잠수함 6척을 동시에 진수시키려고 만석포구에 도크를 신축했고 이에 인력 1300여명이 늘었다. 노동자 숙소 112동이 있던 곳 중심으로 현재 괭이부리말 주거지역이 됐다. 괭이부리말은 한국전쟁 뒤에는 황해도민들이 피난해왔고,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엔 농촌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이 깃들였다. 월간 <굿모닝 인천>의 유동현 편집장은 “괭이부리말의 집들이 낡고 흉해 보일지 모르지만, 개항 이후 인천의 근현대사,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희망을 간직한 곳”이라고 말했다. 인천/김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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