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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 30%가 마당과 수영장…14가구의 ‘유쾌한 반란’

등록 2013-09-08 20:52수정 2013-09-09 10:06

부산 남구 대연동 ‘일오집’은 지하 1층, 지상 4층 흰색 건물 두 채를 ㄷ자형으로 지었다. 14가구가 저마다 제 집을 설계했고, 전용면적을 일부 내놓아 함께 쓰는 커뮤니티 하우스를 마련했다.
부산 남구 대연동 ‘일오집’은 지하 1층, 지상 4층 흰색 건물 두 채를 ㄷ자형으로 지었다. 14가구가 저마다 제 집을 설계했고, 전용면적을 일부 내놓아 함께 쓰는 커뮤니티 하우스를 마련했다.
[현장 쏙] ‘우리 동네 공동체’ 바람 분다 ② 도심 공동체하우스
부산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근처 단독주택들 사이에 ㄷ자 모양 흰색 건물 두 채가 최근 들어섰다. 입주민 14가구, 그리고 함께 쓰는 1가구가 있다고 해 ‘일오집’(14+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하 1층 지상 4층인 일오집 두 채의 겉모습은 다가구주택과 비슷하다. 하지만 나무 대문 안에 들어가면 300㎡ 넘는 잔디마당이 눈에 확 들어온다. 대규모 아파트단지 마당에 견줄 바는 못 되지만, 일오집의 전체 터 900여㎡의 3분의 1이란 점을 알게 되면 놀랍다. 마당 한쪽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수영장과 모래밭도 있다.

입주식이 열린 지난달 31일 일오집은, 40~50대가 어릴 적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던 동네 골목이나 집 안마당 같은 풍경이었다. 모래밭에선 대여섯살 아이들이 모래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잔디마당에선 입주민들이 음식을 나누며 떠들썩했다. 조용한 동네에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2년6개월 만에 완공된 일오집의 입주민들은 저마다 감격스러워했다. 김진희(39)씨는 “이사 첫날부터 아들이 마당에서 뛰어노는 것이 참 좋았다. 좋은 집에서 좋은 이웃들과 살게 돼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일오집엔 여느 다가구주택에서 볼 수 없는 또다른 것이 있다.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커뮤니티 하우스다. 한 건물 1층 70여㎡를 주민 공동 편의시설로 만들었다. 회의를 열거나 반찬을 가져와 함께 밥을 먹기도 한다. 손님을 대접하는 공간도 된다. 장난감과 책을 들고 와 서로 바꿔 놀거나 읽기도 한다.

마당엔 아이들을 위해 작은 풀장을 갖췄다.
마당엔 아이들을 위해 작은 풀장을 갖췄다.

부산 대연동 골목길 ‘일오집’
대안학교 부모들 조합 꾸려
설계부터 시공사 선정 직접
아이들 뛰놀고 주민 같이 쉴
내집 같은 공동체 주택 지어
“10가구 입주…4가구 모집해요”

2011년 2월이었다. 초등학생 또래 자녀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던 학부모 14명이 생각을 모았다.
뜻을 모은 지 2년6개월 만에 완공해 지난달 31일 입주식을 연 주민들이 두 손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뜻을 모은 지 2년6개월 만에 완공해 지난달 31일 입주식을 연 주민들이 두 손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함께 뛰놀고 부모들이 밥 한 끼와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내 집 같은 아파트를 지어볼 순 없을까….’

그해 12월 출자금을 모아 대안학교 근처 땅을 사들이고 주택협동조합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설계는 안소희(42) 주택협동조합 대표의 오빠인 안웅희(47)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교수가 맡았다. 안 교수는 “건축에 문외한인 이들이 함께 집 지어 살겠다고 해 깜짝 놀랐다. 새로운 아파트 문화운동의 발을 내딛는다는 의미가 있겠다 싶어, 재능 기부한다는 마음으로 설계를 맡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오집의 구조와 시공업체 선정 등을 투표와 회의로 결정했다. 각자 집 내부를 직접 설계했다. 베란다와 배관 등의 위치가 제각각이었다. 획일적인 공동주택 구조를 바꿔보자는 ‘유쾌한 반란’이었다. 견적을 낸 건설업체 7곳 가운데 1곳을 시공업체로 선정했고, 지난해 11월 착공했다.

아이들한테는 ‘마당과 수영장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가구마다 방 한 칸쯤 되는 전용면적 20~30㎡를 내놓았다. 주차장을 지하로 돌려야 해 건축비가 늘어났지만 감수했다. 너른 마당을 마련하려다 보니 건폐율(대지면적 중 건물 바닥면적 비율)은 37%에 머물렀다. 주거·준주거지역의 건폐율이 60~70%까지 허용되는데 매우 낮은 것이다.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 비율)도 120%로, 허용기준 200~500%보다 낮다. 입주민 배한철(43)씨는 “대부분 집값을 올리려고 전용면적을 늘리지만, 어릴 적 뛰놀던 아름다운 추억을 아이들에게 선물하자고 생각했다. 전용면적이 줄어 집은 좁아졌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오집은 입주민들이 설계와 시공업체 선정 등에 참여하는 ‘코하우징’(co-housing)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와 비슷하다. 일오집은 너른 마당을 선택했고, 소행주는 옥상에 정원을 마련했다.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 초 7가구가 자녀를 일반 초등학교로 보내기로 하면서 조합을 탈퇴한 것이다. 담보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땅 소유자가 여럿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기도 했다. 남은 7가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공업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공사대금을 마련했다.

추가로 모집해 3가구를 새 식구로 맞았고, 비어 있는 4가구에 입주할 이웃을 기다리고 있다. 공동 육아를 희망하는 이웃이 오기를 기다린다. 입주민들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나 더 어린 자녀를 둔 30~40대이다.

안소희 대표는 “같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집 지어 사는 것이 별난 것이 아닌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비영리 주택협동조합의 은행 대출 요건이 까다로운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노채 하우징쿱협동조합 이사장은 “일오집처럼 입주민들이 집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코하우징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 아파트까지 확산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확산될 것이다. 주택협동조합이 수도권에서 건물 준공을 하면 과밀억제지역 적용을 받아 취득·등록세가 3배나 많은 것은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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