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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엄만 동화 구연, 뒷집 아빤 축구…재능나눔 ‘행복1번지’

등록 2013-09-21 19:09수정 2013-09-22 13:45

동화구연가 사공성(왼쪽)씨가 11일 오전 청주 성화주공아파트 5단지 파레트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청주/오윤주 기자
동화구연가 사공성(왼쪽)씨가 11일 오전 청주 성화주공아파트 5단지 파레트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청주/오윤주 기자
[현장 쏙] ‘우리 동네 공동체’ 바람 분다 ⑥ 소통과 연대 키우는 재능기부
아파트나 동네 주민들이 어우러지려는 시도들이 빠르게 확산중이다. 그 실마리는 뜨개질, 요리, 동화 구연 같은 재능 나누기, 책·장난감 돌려 읽고 쓰기 등 가까이에 있다. 주민 대표,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불씨를 댕기고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 주공아파트 단지 4086가구 1만여 주민들은 재능기부로 ‘행복 1번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6~2008년 조성된 성화동은 주민의 84.5%가 아파트에 사는 청주의 대표적인 아파트 마을이다.

재능기부가 먼저 뿌리를 내린 곳은 국민임대아파트 단지다. 청주지역 국민임대아파트 9곳 가운데 4곳이 몰려 있다. 재능기부는 시민단체 ‘함께 사는 우리’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5~12월 주민 면접, 설문조사 등으로 주민 219명이 965가지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걸 밝힌 ‘재능 지도’를 만들었다. 박만순 대표는 “저소득층이 많아 소속감이 낮은 탓에 입주자협의회조차 구성되지 못하는 곳이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교육·문화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주민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려고 재능기부 공동체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전 성화 주공5단지 관리동 2층을 찾았다. 이곳에 파레트도서관, 함께사는우리 등이 입주해 있다. 도서관 한켠에 올망졸망 모여 앉은 30여개의 눈동자는 동화구연가 사공성(38)씨의 손과 눈, 입을 따라 움직이며 “와~” “까르르”를 연발했다.

1단지에 사는 사공씨는 지난해 3월부터 수요일마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4~5살 어린이들에게 동화구연을 해주고 있다. “어렵사리 배운 동화구연을 내 아이에게만 하는 게 아까웠지요. 이렇게 이웃 아이들과 나누니까 보람이 엄청나요. 주부에만 그쳤던 존재감도 살아나는 것 같고요.”

이 아파트 단지에선 날마다 재능기부로 강연, 놀이, 교육이 이어진다. 5단지 파레트도서관에서는 뜨개질, 홈패션, 구연동화, 청소년 미디어 교실, 청소년 축구 교실 등이 열린다. 4단지 성화꿈터 도서관에서는 수채화, 한글·컴퓨터 교실 등이 이어진다. 수강이 자유로워 들쭉날쭉하지만 날마다 평균 100명 이상이 참여한다. 홈패션 강사인 도영주(34)씨는 “재능을 지닌 이들은 나눠서 기쁘고, 주민들은 멀리 가지 않고 돈 들이지 않고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 이웃끼리 정이 돈독해지고 웃음이 넘친다”고 말했다.

기부자들 면면은 참 다양하다.

청소년 미디어 교육과 축구 교실을 운영하는 이상엽(32)씨는 지난해 일본 나고야대에서 사회교육학을 전공한 뒤 함께사는우리의 특이한 마을 만들기에 끌려 마을에 정착했다. 이씨는 “일본에도 아파트나 마을 단위 공동체 사례가 꽤 있지만 재능기부형 공동체 건설은 이례적이다. 넉넉지 않은 이들이 재능을 나누며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근 충북고·산남고 학생 20여명도 돌아가며 주말마다 초·중학생 11명에게 국어·수학 등을 가르치고 얘기도 들어준다. 강태훈(18·충북고2)군은 “아이들 공부를 도와주려고 찾았는데, 지금은 한부모가정 등 외로운 아이들의 형·오빠로 만나는 게 더 소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예가 최명자(67)씨는 서예·사군자 교실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화실을 운영하는 최윤희(43)씨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그림 지도를 한다.

주민들은 지난 5월 틈틈이 익힌 솜씨를 뽐내는 축제를 열었다. 이웃 아파트 주민들까지 찾아 ‘대박’이었다. 박종국(45) 성화주공5단지 관리소장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많은 우리 아파트는 재능기부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으로 이웃 아파트 주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재능기부자와 수혜자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덤”이라고 말했다.

함께사는우리는 재능기부를 적립하고 필요할 때 가져다 쓰는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재능은행’을 차리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박 대표는 “숨은 재능꾼을 더 끌어내고 재능 주고받기를 더욱 활발하게 하려는 것이다. 내년엔 어학, 인문학 등 10여개 재능 강좌를 더 만들 생각”이라며 뻗어가는 포부를 내보였다.

주민들이 공동체를 일궈가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치단체들도 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주민 공동체 활동이나 커뮤니티 공간 운영 등 주민 제안 공동체 사업 지원에 나섰고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열었으며, 부산시도 지난달 주민 모임, 주민공동체 공간, 주민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했다. 충북 청주시, 경남 창원시, 전북 전주시 등은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를 돕는 지원센터를 가동중이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12월 시행될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주민 참여 공동체 조성의 기폭제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법은 주민 참여의 길을 열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지원할 근거 규정도 담았다.

황희연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살고 싶고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은 이미 대세가 됐다.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자치단체 및 정부와 소통하도록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주/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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