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아파트 권력’ 입주자대표회의, 비리와 갑질…주민관심이 첫 해법

등록 2013-09-23 09:39

대구지역 한 아파트에서 지난 6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후보자 합동연설회를 앞두고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가 연설회장을 점검하고 있다. 대구아파트사랑시민연대 제공
대구지역 한 아파트에서 지난 6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후보자 합동연설회를 앞두고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가 연설회장을 점검하고 있다. 대구아파트사랑시민연대 제공
500가구 넘으면 주민 직선제지만
선관위에 부녀회·관리소장 입김
사실상 선거때 거수기 노릇 일쑤
공동주택법 통합·관리청 신설해
이해당사자들 관리·감독 확대해야
대구 달성군 가창스파밸리 컨벤션센터에 지난 5월29일 450여명이 모여 ‘투명, 공정’ 구호를 외쳤다. 대구지역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회장, 감사, 동대표, 부녀회장, 관리사무소장들이었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와 방법으로 공동주택을 운영·관리하고, 비리와 부정을 척결하겠다’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딱딱한 자정 결의대회에 참가한 연유는 이렇다. 아파트 주민들 공동의 이익을 위해 꾸린 입대의가 언젠가부터 ‘비리의 온상’처럼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전국 주택 1487만7000호 가운데 아파트가 58%가량인 867만1000호(58%)에 이른 상황인데도,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아파트 입대의 구성·운영은 주민들의 기대와 거리가 한참 멀어져 있다.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협력하는 ‘거버넌스’, 곧 협치(協治) 방식이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서 확산되고 있지만, 아파트 입대의까진 영향이 닿지 않고 있다. 형식적으론 주민들이 직접 대표를 뽑은 법정 단체인데도,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입대의 사이의 반목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대의 구성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부터 공정한 관리자라는 ‘필터’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다. 2010년 7월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선 주민 대표를 직선으로 뽑도록 규정이 바뀌었지만, 입대의 회장 선출이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체감하는 주민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 주민들은 ‘입대의 회장이 주민 동의 없이 장기수선충당금 4억원을 다른 용도로 썼다’며 회장 해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할 것을 아파트 자체 선관위에 요구했다. 하지만 아파트 선관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소송으로 번졌고, 법원은 올해 3월 선관위에 ‘투표 이행강제금 명목으로 하루 10만원씩을 입주민에게 지급하라’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아파트 선관위가 주민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입대의 회장 쪽의 방패막이 구실을 했음을 법원이 인정한 사례다.

아파트 선관위 구성부터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관리규약 준칙에는 선관위원 추천권을 입대의 회장, 관리사무소장, 부녀회, 노인회 등이 갖도록 규정돼 있다. 선관위원들이 ‘아파트 권력’이라 할 이들의 거수기 구실에 그칠 공산이 큰 것이다. 대구아파트사랑시민연대 신기락 사무처장은 “입대의가 입주민들이 아니라 부녀회·노인회 등 일부 기득권 단체만을 대표하는 기구로 전락하곤 하는 것은, 입대의 회장·임원 등을 선출하고 감시하는 아파트 선관위의 구성부터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천시는 아파트 선관위를 구성할 때 입주자 가운데 희망하는 자를 우선적으로 공개 모집해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신진세력’이 선관위원으로 나설 수 있도록 우선권을 준 것이다. 시민단체와 법무법인 등으로 선관위를 꾸리자거나, 지방정부가 전문 인력을 활용해 입대의 회장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기락 사무처장은 “입대의 비리를 원천 차단하려면, 자치단체나 독립기구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입대의 선거를 감독하는 등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1년 8월24일 새벽 울산의 아파트에서 입대의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선정을 놓고 입대의 안에서 내분이 빚어진 상태였다. 업체들은 가구당 연간 위탁수수료로 25만원, 26만원, 27만원을 제시했는데, 가장 비싼 27만원을 제안한 업체가 뽑힌 뒤였다. 당연히 입대의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시가 지난 3월 변호사·회계사·기술사 등으로 ‘맑은 아파트 만들기 추진단’을 꾸려, 비리 의혹이 제기된 아파트 단지 103곳 가운데 11곳을 골라 6월 한달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입대의와 관리사무소는 ‘비리 백화점’이나 다름없었다. 주먹구구식 공사 발주, 수의계약 남발, 입찰 짬짜미(담합) 등 모두 168건의 부조리가 드러난 것이다. 지난 6월 아파트 관리 비리 특별단속에 나선 인천지방경찰청은 지금까지 1명을 구속하고 39명을 입건했다. 비리 유형은 서울시 조사 결과와 비슷하게 공사·용역업체로부터 금품 수수 30건, 관리비 횡령 11건, 입찰 비리 등이었다.

아파트 관리비는 개별 가구 처지에선 한달 몇십만원 선이지만, 공동주택에선 뭉칫돈이다. 그 쓰임새와 관리·감독 권한은 사실상 입대의에 맡겨져 있다. 곳간의 열쇠를 쥔 입대의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의 송주열 회장은 “현행 아파트 관리·운영체계는 입대의가 의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불법도 합법으로 둔갑한다.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잘못 집행된 관리비는 회수할 수 없다. 따라서 아파트 비리는 예방적 차원에서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공동주택 관련 법률을 통합하고 전담 관리조직으로 공동주택관리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서울시 공동주택지원센터를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조직으로 꼽기도 한다.

서울연구원은 ‘2010년 아파트 관리의 공공성 제고 방안’ 보고서에서 “아파트 관리 관련 소식의 통로는 관리사무소 50.3%, 입대의 21.5%, 자생조직 1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입대의와 주민들의 소통이 일방적 전달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