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현대판 박목월·이중섭들 덕에 쇠락한 한짓골 ‘떠들썩’

등록 2013-09-29 20:42수정 2013-09-29 22:40

제주시 옛 도심 산지천 주변에서 지난해 7~10월 토요일마다 열린 첫번째 프린지페스티벌에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져 시민과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제주 프린지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제공
제주시 옛 도심 산지천 주변에서 지난해 7~10월 토요일마다 열린 첫번째 프린지페스티벌에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져 시민과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제주 프린지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제공
[호남·제주 쏙] 예술로 다시 숨쉬는 제주 옛도심
제주시내 한짓골은 제주의 오랜 중심지였다. 1980년대 이후 외곽 새도시로 사람들이 떠나며 쇠락해갔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더니 프린지(변방) 페스티벌을 열어 옛 도심을 되살려내자고 나섰는데….

7080 문학·예술인의 놀이터
90년대 신도심 형성뒤 썰렁

1~2년전부터 예술인들 둥지
옛 도심 살리기 움직임 활발

올해부턴 ‘프린지페스티벌’
연극·실내악 등 볼거리 다양
‘중 다산쯔’ 같은 예술특구 꿈

제주시 옛 도심에 자리한 삼도2동 한짓골. 조선시대 ‘한질’(큰길의 제주 사투리)이 있는 동네였다는 데서 유래한 한짓골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중심지이자 오래된 문화전통을 지닌 곳이었다. 80년대 중반 ‘386세대’는 사회과학서점 사인자와 대동서점을 들락거렸고, 막걸리 주점에서는 종종 토론으로 날밤을 새우기도 했다.

한짓골은 1899년 천주교 제주교구 최초의 본당이 들어서 제주지역 선교의 거점이자, 1970~80년대 문학과 예술에 목마른 청년들이 거리를 메웠던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피난민이 대거 제주로 몰려들던 시절에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학인 박목월·계용묵씨, 미술인 이중섭·장리석·김창열씨, 연극인 김묵씨 등이 예술판을 펼쳐놓고 제주의 청년들을 매료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한짓골은 1980~90년대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썰렁했던 한짓골 일대가 최근 기지개를 펴고 있다. 1~2년 전부터 문화예술인들이 값싼 사무실을 찾아 한짓골로 모여들고 있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가 지난해 2월 한짓골에 둥지를 튼 뒤 ‘옛 도심을 살리는 문화예술운동을 펼치겠다’며 도서출판 각과 제주전통문화연구소, 각 북카페가 뒤이어 주변에 입주했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가 들어선 건물의 지하에는 박창범 화가의 작업실이 있다.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시(C)도 주변에 있다. 오이소극장, 미예랑소극장, 제주평화인권센터, 고길천 화가의 스튜디오, 제주여민회의 오만가지공방, 미래발전연구원, 영상업체 3프레임 등 각종 소극장, 전시장, 연구소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제주 프린지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제공
제주 프린지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제공
한짓골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벌이는 ‘제주 프린지페스티벌’이 10월1~19일 열린다. 지난해 처음 열린 이 페스티벌은 산지천 주변에서 열렸으나 올해부터는 한짓골로 장소를 바꿨다. 단순히 일회성 축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짓골의 골목에 이야기를 입혀 문화예술의 거리로 살려내자는 취지다.

연극과 실내악, 마임 등을 공연하는 프린지 시어터, 주변부 삶을 다룬 영화를 보여주는 소규모 영화제인 프린지 시네마, 작가들이 참여하는 길거리 전시회인 아트워크,
제주 프린지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제공
제주 프린지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제공
문학콘서트, 거리공연 위주의 아트로드, 예술공방 등이 참여하는 아트마켓, 원도심 올레답사 등의 행사로 짰다.

공연팀만 70여팀에 이르고, 문학가와 작가 등을 합쳐 300여명이 참여한다. 다문화, 다장르의 공간이고 프로와 아마추어, 초등학생부터 60대에 이르는 동호인들도 참여한다. 그동안 제주에서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축제다. 축제 기간에 열리는 아트마켓에 참여하는 배필성(39)씨는 2011년 8월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수제잼을 제조·판매하는 배씨는 “지난해 지인의 연락으로 참여했다. 판매 목적보다는 제품을 알리고 문화예술 축제를 보고 싶어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봄이(30)씨는 지난 7월 결성한 문화예술단체 ‘살거스’를 알리려고 참여한다. 프랑스어로 ‘개구쟁이들’이라는 뜻인 살거스는 프랑스 출신의 3명과 함께 제주지역 공연을 찾아다닌다. 10월1일 개막식 때 공연하는 살거스 단원들은 저글링, 현대무용, 즉흥극 전문가들로 짜였다. 매니저를 겸한 김씨는 “단체를 알리려고 제주에서 열리는 웬만한 문화축제에는 모두 참여하려고 한다. 제주에서 보기 힘든 거리극이나 퍼포먼스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70년대 제주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토론과 전시회장으로 이용했던 소라다방 자리에는 지난해 8월 양천우(39)·홍덕표(39)·양동규(36)씨가 만든 영상업체 3프레임이 들어섰다. 이번 축제 때 ‘후쿠시마의 미래’, 위안부 할머니들을 평화 만화책으로 만드는 과정을 담은 ‘그리고 싶은 것’, 성미산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다룬 ‘춤추는 숲’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양동규씨는 “이번 축제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평소 발산하지 못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같이 놀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옛 도심 문화예술운동과 소라다방의 의미를 담고 싶어 ‘제주프린지영화관 소라다방’이란 이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사무실을 절반은 카페 분위기로 만들어 한두달에 한번씩 다큐멘터리도 소개할 참이다.

축제 예술감독 최상돈(47)씨는 “지난해에는 사정하다시피 부탁해 초청했다. 올해는 지난해 공연했던 단체들에 우선권을 주고 새로운 단체를 신청받았는데 5 대 5 비율이다. 신청 마감이 끝났는데도 공연하고 싶다는 단체들도 있다. 축제가 볼거리가 있고 재미가 있으면 스스로 오게 된다. 그렇게 만드는 데는 최소한 3~4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한짓골이 중국의 다산쯔 예술특구 같은 문화예술명소가 될지 주목할 만한 실험이다. 베이징의 ‘다산쯔 798 예술구’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꼽힌다. 1996년 버려졌던 군수공장 지대에 미술가들이 값싼 사무실을 임대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갤러리가 열리고 거리에 작품을 세워 예술을 입혔다. 카페와 음식점들도 덩달아 들어섰다. 지금은 갤러리, 공방, 카페들이 들어선 국제적인 예술특구가 됐다. 제주 옛 도심 역사문화기행을 맡은 강문규(58)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은 “‘프린지’는 변방이라는 뜻이다. 제주도 자체가 대한민국의 변방이라는 취지에서 보면 제주도가 프린지 페스티벌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진다. 이번 축제를 발전시키면 원도심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위원장 박경훈 제주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은 “이런 축제를 통해 새롭게 이주해온 문화 이주민들을 놀게 해주는 판을 마련하고 싶다. 도시와 농촌 주민들, 다문화 가족, 이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스펀지처럼 수용력과 포용력이 있는 축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산지천 주변에서 축제를 열었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았다. 원도심을 살리려면 문화예술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한짓골의 부활은 주변 상권의 재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