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씻김굿의 원형을 고집스레 지켜온 채정례 선생
영화 ‘영매’ 주인공으로 출연
전라도 씻김굿의 원형을 고집스레 지켜온 채정례(사진) 선생이 지난 21일 별세했다. 향년 87.
고인은 굿판에선 엄격했지만, 망자의 한을 위로하면서 그 슬픔이 서러워 눈물을 흘릴 정도로 따뜻했던 ‘무당’이었다. 또 우리 민속문화 원형을 몸으로 지탱하며 살았던 큰 ‘당골’(세습 무당)이었다.
채 선생은 굿을 대물림해온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나 전남 진도에 살면서 무업을 해왔다. 굿을 미신으로 터부시하던 사회적 분위기에 굿판을 멀리하다, 열여덟 살 때 함인천(85)씨와 결혼해 의신면 만길리에 살면서 무업에 입문했다. 생계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굿을 보고 자란 그는 언니 채둔굴(2000년 숨짐)씨한테서 무가를 배워 장구를 배운 남편과 함께 굿판에 섰다. 고인은 2007년 <한겨레> 기자와 만나 “망자의 한을 풀어 부정을 깨끗이 씻겨 극락으로 천도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고인은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지 못했지만, 좋은 목청을 타고났고 굿 사설이 장단에 똑떨어져 명인으로 이름났다. 무속인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영매>(2002)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2005년 그의 구술집(국립남도국악원 펴냄)도 나왔다. “내가 죽어불면 (굿을) 할 사람이 없응께, 기를 쓰고 갈친다(가르친다)”고 하며 제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22일 저녁 진도읍 산림조합추모관에서 고인의 넋을 위한 굿판이 열렸다. 제자 중 세 명이 굿을 주재했다. 2011년 광주 임방울 국악제 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소리꾼 채수정(44·음악학 박사)씨는 “1999년 처음 선생님을 찾아뵙고 굿을 배우며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 죽음의 자리에 섰을 때 판을 움직이는 기운은 정정당당함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60년을 굿판에 섰던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굿판에서 다루던, 수백년 된 정주(작은 종처럼 생긴 굿 도구)가 남았다. 고인은 생전 “내가 요렇게 생겼응께, 다음 시상(세상)엔 제일 이쁘게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광주/글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