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부산시청 녹음광장에서 열린 ‘품마켓’ 장터에서 주민들이 마을기업의 제품을 팔고 있다.
지역주민들 지역화폐 ‘복’으로
마을기업 40여곳 제품 사고팔아
“마을 스스로 소비·생산·소득”
마을기업 40여곳 제품 사고팔아
“마을 스스로 소비·생산·소득”
“이것으로 물건을 사면 되나요?”
14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녹음광장에서 ‘품마켓’이라는 특이한 시장이 열렸다. 천막 형태의 가게 40여곳에선 상인과 손님들이 물건을 두고 흥정을 벌였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팔면서 오가는 것은 돈이 아니라 주황색의 조그만 종이였다. ‘복’이라는 지역화폐였다. 품마켓을 찾은 김아무개(67)씨는 “이상한 종이로 물건을 사는 것이 낯설지만 재미있다”고 말했다.
‘복’은 1만원·5000원·1000원·500원 등 4가지였다. 물건값도 이 단위에 맞춰 매겨졌다. 손님은 물건을 사기에 앞서 장터 가장자리의 환전소에서 현금을 ‘복’으로 바꿔야 한다. 상인도 손님한테 거스름돈을 ‘복’으로 준다. 해 질 무렵 상인들은 벌어들인 ‘복’을 환전소에서 현금으로 다시 바꿨다. 이날 품마켓에서 선보인 ‘복’은 지역화폐의 초기 단계로, 주민들에게 지역화폐를 소개하고 사용법을 훈련시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역화폐가 활성화되면, 일정 지역 안에서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다.
장터 상인들은 원주민을 내쫓는 대규모 아파트 개발 대신에 지금의 마을을 보존하면서 활력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2009년부터 마을기업을 세워 운영하는 원주민들이다. 이날 원주민들은 마을기업에서 만든 제품들을 판매했다.
품마켓은 원도심을 지키는 주민들이 자신의 시간·재능·노동력을 이용해 만든 제품을 사고파는 소통의 자리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복’이라는 새로운 거래수단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시간과 재능을 사는 것이다.
이날 품마켓에선 마을기업 40여곳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만든 천연비누, 천연 염색 목도리, 간이 의자 등 다양한 제품이 선보였다. 이주여성 등 10여명이 세운 서구 초장동 마을기업 ‘한마음마을’의 엄복남(60)씨는 “가구를 만들 시간이 부족해서 많이 가져오지 못했다. 같은 마을기업들이 한곳에 모이니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장터는 도시재생사업을 이끄는 ‘부산시 마을만들기 지원센터’가 열었다. 품마켓 행사를 총괄한 변강훈 마을만들기 활동가는 “소비·생산·소득이 함께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마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도시재생사업이 스쳐가는 사업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 마을에서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지역화폐는 선순환 구조를 떠받치는 중요한 다리 구실을 할 수 있다. 마을기업들의 제품 판로를 열어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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