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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얼굴도 모르던 아파트주민들 축제 열고 ‘하하호호’

등록 2013-11-24 22:13수정 2013-11-26 12:14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월계사슴2단지 아파트 관리동 앞에서 열린 주민축제에서 주민공동체 ‘행아공’의 합창동호회 회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월계사슴2단지 아파트 관리동 앞에서 열린 주민축제에서 주민공동체 ‘행아공’의 합창동호회 회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수도권 쏙] 첫 ‘아파트 공동체’ 서울 월계동 사슴2단지
주민들의 열의, 민간 연구소의 노하우,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만나 서울에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실험에 나선 지 6개월이 지났다. 도시 아파트에서 ‘공동체’란 말이 아직 낯선데, 실험에 참여한 주민들이 공동체를 일궈갈 실마리를 잡아낸 것일까?

지난 1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월계동 월계사슴2단지. 아파트 관리동 건물 출입구 앞에 꾸민 무대 위에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50~60대 여성 13명이 나란히 섰다. 주민들이 꾸린 합창동호회 회원들이다. 이날 사슴2단지 주민 축제에 들른 주민 70여명 앞에서 이들은 트로트 가요 ‘있을 때 잘해’를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선보였다. “이제는 마지막 마지막 기회야. 이제는 이웃과 인사를 나눠봐. 우리는 행복한 사슴2단지. 이웃에 잘해 우리가 잘해. 맘 좋은 아줌마 넉넉한 아저씨. 우리는 행복한 사슴2단지.”

노원구 주민들의 우쿨렐레 모임 ‘나우연’(나와 마을을 치유하는 우쿨렐레 연주 모임)의 연주, 인근 노원종합사회복지관의 풍물패 공연 등이 이어졌다. 앞치마를 두른 합창동호회 회원들은 부지런히 국수, 돼지머리 고기, 떡, 과일 등을 주민들에게 날랐다. 주말 낮 시간 주민 축제가 열린 사슴2단지 아파트는 흥겨운 분위기로 왁자지껄했다. 베란다에 나와 구경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 아파트에 산 지 18년 만에 이런 축제는 처음입니다. 너무나 좋죠.” 임병태(55) 사슴2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싱글벙글했다. 202동에 산다는 북한이탈주민 이분선(72)씨는 “한국에 온 지 7년 됐는데 이리 행복한 ‘조직사업’ 하는 것은 처음 본다. 행복하고 즐겁다. 우리 단지엔 북한이탈주민이 많지만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데 이런 축제를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말 희망제작소와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공사, 노원구, 강동구, 한겨레신문사가 손잡고 시작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실험이 6개월째 접어들면서 아파트단지에서 공동체 활동에 앞장서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망제작소 뿌리센터는 전북 완주군을 비롯해 울산 북구·동구, 서울 성북구 등에서 공동체 가꾸기 사업을 해온 경험을, 처음으로 아파트 공동체 지원에 쏟았다. 755가구가 사는 공공임대주택인 사슴2단지, 분양 276가구와 임대 455가구가 함께 사는 서울 강동구 강일동 강일리버파크 7단지 주민들이 공동체 실험에 나섰다.

희망제작소가 마련한 ‘마을학교’를 마친 사슴2단지 주민들은 주민 모임의 이름을 ‘행아공’(행복한 아파트 공동체를 줄인 말)으로 짓고 합창동호회, 봉제공동체, 밥상공동체, 요가동호회 등을 꾸렸다. 이틀에 한번꼴로 모여 연습했던 합창동호회는 주민 축제에 이어 다음달에도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요가동호회는 축제 직후인 19일 저녁 첫 모임을 했다. 주민 모임 꾸리는 일을 도운 송지영 희망제작소 연구원은 “요가 모임에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나이의 주민 25명이 모였다. 주민 사이의 활발한 소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마을학교’ 수료 뒤 친해진 주민들
합창동호회·봉제공동체 등 꾸려
잔치 열고 이웃간 소통의 장 펼쳐
재능 나누면서 마을기업 구상도

공동체사업 지원해온 희망제작소
“세대간 결합 등 공동체 지원 계속”

봉제공동체는 아파트 관리동 건물 2층 주민자치회 방 한쪽을 쓸 계획이다. 노원구가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공모사업 지원금을 들여 재봉틀 2개와 휘갑치기(오버로크)용 재봉틀 1개를 내줬다. 박영애(65)·오인선(66)씨를 비롯한 주민 10여명이 함께할 계획이다. 이들은 노원구 광고물 개선팀이 걷어내 모아놓은 폐펼침막을 가져다 재봉해, 낙엽을 모으거나 쓰레기를 담는 재활용 마대를 만들어 다시 노원구를 통해 팔 생각이다. 봉제 일을 한 적이 있다는 박씨는 “애들 유치원에 보내 놓고 시간 나는 엄마들 누구나 와서 할 수 있게 하겠다. 수익금으론 불우이웃을 돕고 사슴2단지 기금을 만들어 주민들을 위해 쓸 생각”이라고 했다. 활성화되면 각종 단체 물품을 주문받아 생산하거나 마을 수선가게를 운영하는 등 마을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밥상공동체는 일주일에 한번씩 주민들끼리 어울려 밥 먹는 모임을 꾸려갈 계획이다. 아파트 관리동 건물 2층 서가로 쓰던 곳을 에스에이치공사가 시설 개·보수비 300만원을 들여 부엌으로 개조했다. 밥상공동체를 준비하는 주민들은 “새로 이사온 주민이나 북한이탈주민, 맞벌이가정 아이, 홀몸 어르신 등을 초대해 ‘나눔 밥상’을 열겠다”고 했다.

희망제작소의 마을학교 첫 일정으로 지난 7월 전북 완주군 ‘비비정마을’을 찾았을 때만 해도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했던 사슴2단지 주민들은 이제는 이웃사촌처럼 됐다. 행아공에 참여한 20여명은 이 아파트에 공동체를 꾸려가는 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다.

이날 주민 축제에선 아파트 자치규약을 만들기 위한 의견을 듣는 시간도 있었다. 주민들은 층간소음이나 고성, 노상방뇨, 오물 투기 등의 불편을 쏟아냈고 나름의 제안도 제시했다. 아파트 일상생활과 밀접한 사안들을 공론의 장에 털어놓는 기회였다. 주민 김광선(55)씨는 “아침에 나와 보면 아파트 계단에 담배꽁초가 많이 떨어져 있다. 계단에서 오줌 냄새도 난다. 의식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 어르신들이 단지 안을 활보할 수 있게 하자거나, 아이들이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교육을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낮은 층에 산다는 주민은 “고층에서 물을 너무나 뿌려댄다”고 했고, 다른 주민은 “밤늦게까지 떠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조용히 좀 해달라”고 주문했다. 몇 년 전까지 활동했던 단지 자율방범대를 다시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자, 임병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자원자가 모자라 필요한 인원을 확보하기가 난망하다”고 대답했다.

주민 축제에 초대된 노원구의원은 “주민들이 아파트단지 문제를 놓고 건설적 논의를 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얘기를 모여서 할 수 있게 된 기회를 가진 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슴2단지보다 규모는 작지만 강동구 강일리버파크 7단지 주민들도 공동체 만들기에 한창이다. 마을학교에 참여했던 주민 20여명은 관리동 건물에 딸린 탁구장을 주민들이 잘 찾는 곳으로 활성화하고, 책이 놓여 있을 뿐이었던 문고실을 아이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달 말부터 탁구 잘하는 주민의 재능기부로 탁구교실을 운영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편히 쉬며 책과 함께 놀 수 있게 주민들이 직접 문고실을 꾸미기로 했다. 재능 있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강사를 맡아 아로마테라피 교실, 커피 핸드드립 교실, 육아놀이 교실도 열 참이다.

희망제작소는 노원구 사슴2단지 ‘행아공’ 주민 모임이 더욱 활발하게 활약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강동구 강일리버파크 7단지는 주변 단지의 자생적인 육아공동체 등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참여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홍선 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센터장은 “이 두 곳과 별도로 서울시의 대학생 임대주택인 ‘희망하우징’이나 다세대주택 등으로, 또는 이 둘을 엮어 세대간 결합을 꾀하는 방식으로 내년 주민공동체 형성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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