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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큰 배 드나들던 옛시절 영도다리처럼…

등록 2013-11-27 22:34

47년만에 영도대교 상판 올리자
기념식 지켜보던 시민들 환호성

일제가 물자수송 위해 만든 다리
6·25 전쟁때 피란민 아픔도 담겨
47년 만에 부산 영도대교가 다리 일부를 하늘로 들어올리던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앞으로 영도대교 상판은 날마다 정오에 한 차례 들려진다.

27일 오후 2시20분께 부산 중구 남포동과 바다 건너 영도구를 잇는 길이 214.6m, 너비 25.3m, 높이 7.2m의 영도대교 남포동 쪽 상판(다리 윗부분) 31.3m가 1~2분여 만에 75도 각도로 올라갔다. 상판이 올라가자 다리 양쪽 가장자리와 남포동 자갈치시장 매립지 등에서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 3000여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앞서 오후 1시20분부터 허남식 부산시장, 김석조 부산시의회 의장 등 3000여명은 영도대교 근처 자갈치시장 매립지에서 상판 일부가 위로 들려지는 도개식 기능을 갖춘 영도대교 복원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상판이 다시 내려온 뒤에는 다리 양쪽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다리 중간에서 만나기도 했다. 또 영도대교 복원을 축하하는 축포 7000발이 하늘을 수놓았다.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한 물자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완공했다. 다리 위로는 전차가 다녔고 다리 밑으로는 50t급 이하의 배가 지나갔다. 많게는 하루 일곱 차례 상판이 들렸는데, 이때는 1000t급 이상의 배도 드나들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피란민들은 영도대교 근처에서 두고 온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향수를 달랬다.

영도대교의 상판 들기는 1966년 9월 중단됐다. 교통량이 증가하고 영도구로 이어지는 상수도관이 상판을 따라 설치됐기 때문이다. 영도대교는 애초 영도다리로 불렸으나 1980년 인근에 부산대교가 건설되면서 영도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낡은 다리를 허물고 새로 짓자는 주장도 나왔으나 시민들은 보존을 선택했다. 부산시는 2006년 영도대교를 부산시 문화재(지정기념물 56호)로 지정하고 도개식 기능을 갖춘 애초의 영도대교로 복원하도록 결정했다.

영도대교 복원비 1000여억원은 옛 영도대교 근처에 호텔 등을 세우는 롯데그룹이 냈다. 부산시는 2010년 복원에 들어가 4여년 만에 공사를 마쳤다. 복원된 영도대교의 길이는 그대로지만 너비는 복원하기 전 18.3m(4차로)에서 25.3m(6차로)로 늘어났다. 양쪽에는 너비 2.7m의 인도가 설치됐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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