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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여성이 내민 커피 한 잔에 향긋해지는 동네 사랑방

등록 2013-12-08 20:30수정 2013-12-08 20:55

전북 완주군 봉동읍사무소 1층에 있는 북카페 보물섬에서 6일 주민들이 모여 책을 보거나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완주군 제공
전북 완주군 봉동읍사무소 1층에 있는 북카페 보물섬에서 6일 주민들이 모여 책을 보거나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완주군 제공
[호남 쏙] 결혼 이주 여성의 또다른 친정 ‘보물섬’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북카페 ‘보물섬’은 결혼이주여성과 지역 주민을 묶어주는 거멀못 구실을 한다. 이곳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은 향수를 달래고 자격증 공부를 하며, 주민들은 음료를 마시며 얘기하는 사이 편견을 녹인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사무소 1층에 결혼이주여성들이 꾸린 북카페 ‘보물섬’이 있다. 지난 4일 오후 바깥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지만 33㎡(10평)도 안 되는 보물섬 안에는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 냄새가 가득했다. 이곳에선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3명이 일한다.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이곳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보물섬 운영 책임을 맡은 딘티투(26)는 한국에 온 지 7년 됐다. 단무지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다 1년여 전 여기로 왔다. 그는 “여럿이 모여서 얘기하니까 한국말도 빨리 배우고 베트남 친구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일도 편하고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손님이 뜸할 때 틈틈이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공부한다. 처음에는 커피 맛을 몰랐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지난 7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저의 경험을 살려서 앞으로 저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걸 돕고 싶어요.”

함께 일하는 응우옌옥프엉(25)은 한국에 온 지 5년 됐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는 그는 “언니들과 얘기하면서 커피 만드는 방법을 배운다. 설날 연휴같이 고향이 많이 생각날 때는 이곳에 와서 같은 처지의 친구를 만나서 고향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8년 된 도티흐엉(26)은 “이곳에 오면 베트남말로 얘기를 나누고 정보도 얻게 돼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북카페가 바쁠 때는 이들의 친구들이 자원봉사에 나서기도 한다.

북카페 이름을 보물섬이라고 지은 것은 미래의 희망을 찾자는 동기에서였다. 기증받은 책이 비록 헌책이지만 잘 수선해서 정돈하면 새 책 못지않은 보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을, 또 결혼이주여성들이 서로 의지하며 노력하면 이곳을 소중한 보금자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았다. 완주군 인구 8만8681명 가운데 결혼이주여성은 544명(0.61%)이다.

이곳이 결혼이주여성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장소는 아니다. 지역 주민들도 함께 쉬고 마시고 놀며 배우는 공동체 문화 터전이다.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공부도 하고 책을 읽는다. 음료수 값은 시중 카페 가격의 40~50%다. 근처 주민들이 부담 없이 자주 찾는다. 주부 송민경(41)씨는 “주변에 카페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땅찮은데, 이곳은 가격도 싸고 눈치 안 보며 오래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편하게 이용한다. 읍사무소가 내년에 이전하는데 카페는 옮기지 않는다고 하니까 다행”이라고 말했다. 주민 김향자(48)씨도 “이곳이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희망이 있는 곳으로 보여서 느낌이 좋았다. 이주여성들이 언어장벽 때문에 대화가 안 되고 의지할 곳도 찾기 쉽지 않을 텐데 여기가 그들의 소통공간이 되니까 보기 좋다”고 말했다.

북카페 보물섬 입구에서 본 내부 모습. 보물섬을 꾸리는 데 큰 구실을 한 김종례(오른쪽)씨가 북카페 안을 둘러보고 있다. 박임근 기자
북카페 보물섬 입구에서 본 내부 모습. 보물섬을 꾸리는 데 큰 구실을 한 김종례(오른쪽)씨가 북카페 안을 둘러보고 있다. 박임근 기자

전북 완주 봉동읍사무소 한켠에
이주여성들이 직접 북카페 열어

명절때면 한데모여 향수 달래고
한국어 배우고 생활정보도 공유
고향음식 주민들과 나눠 먹으며
다문화가정 편견덜고 벽 허물어

학생들은 공부방으로 이용한다. 한송이(14·중2)양은 “학교 주변에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만날 공간이 없다. 도서관은 공부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만 여기는 공부하다 모르는 것을 친구에게 바로 물어보는 등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아기자기한 실내장식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말고도 이곳에서는 한달에 두 차례 이주여성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다.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로 삼는다. 지역 주민들도 처음엔 여기서 만든 외국 음식을 꺼렸지만 지금은 월남쌈, 쌀국수 등을 꽤 좋아한다고 한다. 이주여성들은 지난 7일에는 배추 100포기로 함께 김장을 했다. 배추를 다듬고 절이는 방법과 양념하는 방법 등을 익히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2010년 10월 지식경제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자금을 지원받아 2011년 3월 문을 열었다. 완주군이 주선해 읍사무소 공간 일부를 제공했고, 완주도서관과 주민들이 책 1000여권을 기증했다. 지금은 책이 1만여권으로 늘었다.

북카페 보물섬이 생긴 데는 주변에 있는 열린교회 이병윤(52) 목사 부부의 힘이 컸다. 이 목사의 아내 김종례(54)씨는 2007년 2월부터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한국어를 가르쳤다. 정부가 결혼이주여성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강사를 뽑는 데 지원해 뽑혔다. 5개월씩 완주군에 사는 결혼이주여성 3명씩을 방문해 가르쳤다. 한국어 교사 일만 아니라, 그들의 상담사·해결사 구실까지 맡았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언어 문제로 시집과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았고 그래서 갈등이 커지기도 했다. 자녀 육아, 경제적 문제, 국적 얻는 과정 등에 대한 조언은 그의 몫이었다. 김씨는 “우리나라가 인공위성을 쏘는 2000년대 후반에도 소달구지가 다닐 정도로 오지인 곳도 있었다. 이런 곳에 찾아가면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 강사 계약기간이 끝나면 가르치던 이주여성과 이별해야 했다. 그래서 결혼이주여성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고민도 나누고 교육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교회 예배당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등을 가르쳤다. 당장 육아에 필요한 자장가 등도 알려줬다. 그러던 중 2010년 6월 제6회 완주 맛고을 음식품평회에서 군민 화합을 위해 다문화가정 모국음식 체험행사가 있었다. 베트남팀을 꾸려 월남쌈 종목으로 참석해 장려상을 받았다. 주위에서 식당을 차려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고 한국인의 입맛을 제대로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식당보다는 결혼이주여성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그래서 정부의 시범사업 공모에 신청했다.

북카페를 차리면서는 일부 주민들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어려움도 겪었다. 근거도 없이 시끄럽다거나, 그저 무조건 싫다는 주민들도 있었다. 공간 확보가 쉽지 않았으나 군청 공무원의 주선으로 읍사무소에 보금자리를 얻었다.

보물섬이 문을 연 지 내년 3월이면 만 3년이 된다. 수익을 많이 내야 이주여성들의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는데, 아직 수익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완주군이 보내던 지원금이 내년엔 끊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재정 자립을 앞당기려고 지역 특산품인 토종 생강을 이용해 차와 편강을 만들어 팔고 있다. 완주군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다문화 체험 교실 강사를 요청하면 적극 나설 참이다. 건강한 식재료를 활용한 향수음식·야생음식·이색음식을 주제로 여는 완주군의 와일드푸드 축제에도 부스를 만들어 참여할 방안도 고심중이다.

김종례씨는 “북카페의 가장 큰 성과는 다문화가정 여성과 지역 주민 사이에 이해의 폭이 커졌다는 점이다. 북카페 운영이 이제 궤도에 올라섰지만 아직 자립하기는 이르다. 보물섬 규모가 커지면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더 많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물섬에선 결혼이주여성들의 꿈과 희망이 보석처럼 영글어가고 있었다.

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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