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밀양 주민의 분향소를 8일 설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주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져 주민 4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송전탑 때문에 농약 마셨다 말해”
장례식 미루고 원인 규명 요구
천주교주교회의 “공사 중단하라”
장례식 미루고 원인 규명 요구
천주교주교회의 “공사 중단하라”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밀양주민 유아무개(71)씨의 유족은 고인의 사망 원인 규명, 원인 제공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장례식을 미루기로 했다.
유씨의 큰아들(45)과 딸(42) 등 유족은 8일 오전 빈소가 차려진 경남 밀양시 내이동 밀양농협장례식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버지는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고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분명히 말했다. 경찰은 음독 원인을 왜곡하며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밝혔다.
7일 경남 밀양경찰서는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 음독 사망 관련 수사 결과’ 자료를 내어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제반 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 음독한 것으로 보이며 고인의 사망이 지역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호도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송전탑 건설과 유씨의 자살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내비쳤다. 유씨의 큰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인 5일에도 ‘765㎸ 송전탑만은 막아야 한다’고 가족에게 당부했다”며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들었는데 자식으로서 그냥 덮어둘 수는 없다. 아버지의 사망 원인이 명확히 규명돼야 하고, 원인 제공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이뤄지기 전에는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족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대표 등으로 이뤄진 장례위원회는 8일 오후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인근에 분향소를 차렸다. 유족들은 9일께 빈소를 정리하고 분향소로 옮겨가 조문객을 맞을 계획이다.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주교회의 정평위·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8일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밀양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의 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주교회의 정평위는 한국천주교회에서 정한 인권주일인 대림 제2주일이 시작되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2012년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이후 2년 만에 결코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며 “지역민의 동의와 사회적 공론이 배제된 국책사업이 그 자체로 엄청난 폭력이어서 결국 유○○ 어르신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정부와 한전은 생산 지역과 소비 지역 사이의 차별과 불의를 확대하는 핵발전을 기반으로 한 오늘의 에너지 정책을 총체적으로 재고하라”고 요구했다.
밀양/글·사진 최상원 기자,
조현 종교전문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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