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씨가 18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의 ‘열린 법정’ 행사에 참여해 재심 사건 재판과 관련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김훈씨의 오른쪽은 소설가 이수광씨. 서울고등법원 제공
김훈·김기덕 등 문화예술계 인사 ‘열린 법정’ 참관
“증인들은 법률 용어 못 알아듣고 일상어로 말해”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사법적 장치 더 마련해야
“증인들은 법률 용어 못 알아듣고 일상어로 말해”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사법적 장치 더 마련해야
“재판장과 증인이 얘기하는데 언어의 수준이 너무 달라요. 판사는 법률용어를 일상용어처럼 쓰는데 증인은 못 알아듣고 일상어로 말해요. 증인들에게 법률용어를 쓰라고 할 수 없으니 판사들의 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가 김훈(65)씨는 재판 과정을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18일 서울고등법원이 김훈씨와 영화감독 김기덕씨 등 문화예술계 인사 9명을 초청해 ‘열린 법정’ 행사를 연 자리에서다. 이들은 1시간30분 동안 고등법원 민형사재판 3건을 지켜봤다.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패가망신하고 32년간 고통을 겪었습니다. 죽기 전에 누명만은 벗고 싶습니다. 자식과 나라 앞에서 떳떳하게 살고 싶은 게 소원입니다.” 이들이 살펴본 형사재판에서 한 백발노인은 이렇게 호소했다. 과거 고문·조작으로 간첩 누명을 썼던 이들의 재심 사건이었다.
김훈씨는 답답해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게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엔 없다. 고문을 한 사람들과 기소한 검사들은 지금 법적 처벌을 못하더라도 최소한 국민들한테 그 당시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됐고 지금은 뭐 하면서 사는지 최소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아무 말도 안 한다.”
민사재판은 2009년 정리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쌍용차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이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의 근거가 됐던 쌍용차의 회계감사보고서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쌍용차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적힌 조끼를 입고 있었다. 회계감사보고서를 재감정한 감정인이 노동자들과 열띤 법정 공방을 벌였다.
김기덕씨는 “고통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라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들이 바깥에서 투쟁하는 모습만 봐왔는데, 법정 안에서 당시 경영 상황으로 진실을 따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섬세하게 진실을 가려내는 판사들의 치열함이 짧은 순간에도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사법적 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날 초청자들에게서 나왔다. 드라마작가 정영선씨는 “잠깐 방청했는데도 긴장되고 집중하느라 온몸이 힘들었는데, 약자들은 몇시간씩 재판을 받으면 지쳐서라도 제대로 재판에 임하지 못할 것 같다. 돈 없고 힘든 사람들이 이런 싸움에서 지는 이유인 것 같다. 국선변호인 등 재판 당사자들을 돕는 제도가 더 강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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