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철거가 진행중인 서울 서초구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서 최문순씨의 집이 철거용역들에게 뜯겨나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현장 l 쫓겨난 서울 내곡동 삶터
다섯채 땅주인 소송 내 강제집행
사람 끌어내고 기중기로 들어올려
“제발 5월까지만이라도…” 애원 묵살
다섯채 땅주인 소송 내 강제집행
사람 끌어내고 기중기로 들어올려
“제발 5월까지만이라도…” 애원 묵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영하 6도의 추위 속에 주민 송병예(63)씨는 땅바닥에 널린 살림살이를 뒤적이고 있었다. 전립선 병을 앓는 남편의 약을 찾기 위해서다. 어제까지 지친 삶의 보금자리였던 비닐하우스는 지금 한쪽 귀퉁이만 남아 있다. “병원에서 약 먹고 푹 쉬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약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송씨는 울먹였다.
서울중앙지검 집행관과 50여명의 ‘철거용역’들은 전날인 18일 오전 굴착기와 기중기를 앞세워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 들어섰다. 400여채의 비닐집 가운데 다섯 채를 차례로 기중기로 들어올렸고 굴착기는 잔해를 정리했다. 주민 15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당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주민 최문순(70)씨의 아들 전아무개(34)씨를 비닐하우스에서 끌어냈다. 전씨는 뇌병변 장애 1급을 앓고 있다. “엄동설한에 애를 어디다 데려가 씻기냐. 병원에서 감기 들면 합병증이 든다고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최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10여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고, 2년 전부터 철거 위기에 놓였다. 당시 경매로 땅을 산 김아무개(56)씨는 ‘비닐하우스촌이 내 땅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며 주민들을 고소했다. 법원은 10월 김씨의 손을 들어주며 주민들에게 땅을 비우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마을 주민 이성기(54)씨는 “경매에 넘어가자마자 집주인이 찾아와 화재보험에 가입해주겠다고 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다 받아 갔다. 그런데 그걸로 고소장을 제출한 거였다”며 가슴을 쳤다. 주민들은 법원에서 우편물을 받긴 했지만, 18일 예고도 없이 강제집행을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주민들은 집주인과 집행관을 붙들고 “엄동설한에 어딜 가느냐. 제발 5월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행관은 주민들에게 “겨울에 강제철거를 하지 않는 것은 권고사항일 뿐이다. 강제철거는 비밀을 지키면서 신속하게 해야 한다. 강제철거 하는데 누가 미리 얘기를 하느냐”고 잘라 말했다. 땅주인 김씨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주민들이 보상금을 너무 많이 요구해 철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겨울철 강제퇴거는 반인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하도록 권고돼왔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시는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를 권고해왔다. 동절기 강제집행 금지를 규정한 도시개발법 외에 다른 현행법들은 이런 조항이 없어 여전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인권정책과 관계자는 “겨울철 강제철거는 서울시 인권매뉴얼에 반하는 인권침해 사안이다.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겨울철 강제 철거 집행 등을 금지하는 ‘주거시설 등에 대한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을 제정한 바 있다.
글·사진 서영지 박보미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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