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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연극 같았던 팔순 배우들 ‘무대 열정’

등록 2013-12-23 19:18수정 2013-12-23 22:20

동제주종합사회복지관 실버스타연극단 단원들이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연습하고 있다. 팔순의 최덕금(가운데)씨가 치매노인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동제주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동제주종합사회복지관 실버스타연극단 단원들이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연습하고 있다. 팔순의 최덕금(가운데)씨가 치매노인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동제주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동제주복지관 ‘실버스타연극단’

4·3항쟁과 한국전 상처 어르신들
치매가족 다룬 ‘불효자는…’ 무대
요양시설 공연하며 수익금 기부
“대본 암기 힘들었지만 기쁨 커”
“사랑하는 딸 연옥아 보아라/ 요즘 들어 정신이 더 오락가락 하는구나/ 마치 내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정말 두렵다/ 그렇게 멍하다가 정신이 들고나면 무척이나 가슴이 아련하다./ ……/ 3년 만에 나타난 너에게 모질게 대한 이 에미를 용서하렴/ 미안하다/ 좀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서/ 연옥아~. 죽기 전에 내 사랑하는 딸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지난 20일 제주시 화북2동 ‘사라의 집’에서 치매를 앓는 어르신과 자식들과의 관계를 그린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보면서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 배우’ 이정렬(63)씨가 방백 식으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제주 동부지역의 동제주종합사회복지관 ‘실버스타연극단’이 지난달 하순부터 요양시설들을 찾아다니며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2011년부터 해마다 오디션을 통해 구성하는 실버스타연극단의 3기인 이들 11명 단원은 평균 나이 83살로, 지난 3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매주 수·금요일 복지관에 모여 2시간씩 쉬지 않고 연습했다. 복지관쪽은 어르신 대부분이 4·3항쟁과 한국전쟁 등을 겪은 상처로 우울증을 앓고 있어 연극 연습을 통해 치유할 수 있도록 접근했다.

팔순을 넘긴 출연진들에게 대본 암기부터 난관이었다. ‘까막눈’인 김아무개(87) 할머니에게 특히 그랬다. 하지만 복지관 직원들이 옆에서 대사를 읽어주는 방식으로 연습해, 아예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 김씨는 “관객들이 감동하고, 자식들이 멋있다고 하니까 신이 난다”고 했다.

공연 수익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증했다. “잘 때도 대본을 머리맡에 뒀고, 게이트볼 치러갈 때도 들고 다니며 암기했다”는 치매 어르신 역의 최덕금(80)씨는 “이 나이에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기쁘다. 계속 활동하고 싶다”며 웃었다. 또 다른 치매 어르신 역을 한 김계전(84)씨는 복지관에서 처음 연극을 권유할 때는 자신이 없어 비중이 작은 역을 달라고 했으나 이젠 연극에 맛을 들였다고 했다.

해녀 출신 김영순(87)씨는 78살에 운전면허를 딴 뒤 연습을 위해 복지관까지 직접 차를 몰로 다니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면서 해녀 물질과 농사만 알고 살아왔다. 이번에 연극하느라 제주시내를 구경한 것이 처음일 정도로 집안일만 했다. 연극을 통해 생활의 즐거움을 찾았다”고 말했다. 주연급으로 출연한 나연옥(75)씨는 지난해 큰 병을 앓아 연극을 못할 뻔했으나 병실에서 서성대며 대본을 공부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임기추(87) 단장은 “지난 3월 복지관에서 오디션을 한다기에 경로당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 연극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다시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고, 공동모금회에 입장료를 기부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달 29일부터 지금까지 7차례 공연을 한 이들은 27일과 새해 1월에도 요양시설을 찾아갈 예정이다. ‘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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