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서 강제철거당한 주민들이 갈 곳 없는 처지에 이웃의 비닐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현장 l 내곡동 비닐하우스촌 철거 그뒤
전기장판·난로도 추위 못막아
“내년 봄엔 주변도 철거” 공언에
철거 안당한 이웃도 ‘조마조마’
전기장판·난로도 추위 못막아
“내년 봄엔 주변도 철거” 공언에
철거 안당한 이웃도 ‘조마조마’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눈이 내렸다. 가난이 죄일까, ‘집’을 잃은 사람들은 내리는 눈이 더 서러운 것 같았다. 1주일 전 ‘철거 용역’이 비닐하우스 집을 허물 때도 지금처럼 눈이 왔다.
비닐하우스촌 주민 유인덕(68)씨는 혹독한 추위 속에 잠을 설친 탓인지 양쪽 볼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어제는 용역들이 철거된 자리를 넘어 더 넓게 울타리를 치기에 항의를 했어요. 용역들이 욕을 하면서 ‘이게 당신 땅이냐’고 멱살 잡는데….” 유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엄동설한에 비닐하우스 집에서 쫓겨난 내곡동 주민 15명의 겨우살이는 힘겨웠다. 경매로 땅을 산 김아무개(56)씨가 지난 19일 50여명의 철거 용역을 동원해 다섯 채의 비닐집을 허물었지만(<한겨레> 12월20일치 18면), 제 한 몸 따뜻하게 녹일 자리가 없다.
부서진 비닐집에 깔아놓은 전기장판으론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급한 대로 연탄난로를 놓아 몸을 녹였고, 라면 등을 한쪽에 쌓아놓고 끼니를 해결했다. 이범석(26)씨는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입술이 터져 있다”고 했다. 물을 받아놓은 갈색 양동이에는 살얼음이 동동 떠 있었다.
장애를 지닌 아들을 둔 최문순(70)씨는 이웃이 내준 방 한 칸에서 6명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움막이라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최씨의 아들 전민석(34)씨는 뇌병변 장애 1급을 앓고 있다. 전씨는 철거 당시 놀라서 지금까지 죽조차 제대로 못 먹는다.
철거를 당하지 않은 비닐하우스촌 이웃들도 이번 겨울이 조마조마하다. 지난주 비닐하우스 5채를 허물고 간 철거용역들은 주민들에게 “내년 봄이면 주변 비닐집도 모두 철거하겠다”고 했다. 주민 송춘애(71)씨는 “내년 3월까지는 살게 해 준다고 하더라. 심장병이 있는데 가슴이 덜덜 떨린다”고 했다.
이날 오후 들어 눈발이 굵어졌지만,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의 굴착기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노란색 굴착기 한 대가 비닐집이 철거된 자리의 흙을 평평하게 다지고 있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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