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부 차장 이병수(48)
1944년 4월29일 까까머리 중학생 이와모토 가오루는 행복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동그란 떡 두 개 때문이었다. 한입 베어 물었더니 입안 전체에 달달한 기운이 퍼졌다. “도시 맛이 이런 것이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북 청원 내수 시골마을에서 살다 도회지 충북 청주중학교로 유학온 터라 이런 맛난 음식은 처음이었다. 그제서야 담임에게 떡을 준 이유를 물었더니, “오늘은 일본 천황의 생일이다. 너희들이 먹은 건 축하 케이크다”는 답이 날아왔다. 씁쓸했지만 입에 남은 달달한 기운이 이내 잊게 했다. 떡을 만든 곳은 ‘청주 뻬까리’였다. 일본인이 운영한 제빵점(베이커리)이었는데 모두 ‘뻬까리’라 불렀다. 이와모토 가오루는 해방이 된 뒤에야 이승우(83·전 충북도 기획실장)라는 이름을 찾았다.
이씨의 기억은 최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펴낸 <청주약국 앞 홍문당, 홍문당 옆 청주뻬까리>(도서출판 고두미)에 오롯이 담겼다. ‘성안길 토박이 구술 자료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는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부 차장 이병수(48·사진)씨의 땀이 배어 있다. 그는 2012년 11월부터 최근까지 청주지역 토박이들을 찾아 다니며 40~70년대 성안길의 추억을 모자이크 맞추듯 완성해냈다.
“당시 청주를 중심으로 충북의 역사·문화가 흘러갔고, 지금 옛도심이 된 성안길은 그 중심의 중심이었죠. 성안길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 충북의 역사를 깨우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발품을 팔기 시작했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말마다 어르신들을 찾아나서는 것도 버거웠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것이 만만찮았다. 그럴 때면 옛 사진을 활용해 구술자들의 막힌 기억을 틔우곤 했다.
청주 무심천변 미군 천막에서 나무꾼을 살다 신문사 ‘문선공’을 거쳐 <충청일보> 사진기자가 된 김운기(77)씨는 영운동 피란민 수용소 생활과 서문교 아래 사금 채취 등 당시의 사회상을 잔잔히 풀어놨다. 박영수(76) 전 청주문화원장은 고교 문예 동아리 ‘푸른문’ 이야기와 신동문 시인의 병실까지 찾아 시를 배우던 추억 등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청주여고에 짱구머리를 한 여학생이 참 돋보였던 기억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당대 최고의 방송작가로 꼽히는 김수현(71)씨였다.
지역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청주시문화재단으로 옮긴 이씨는 2004년 ‘디지털 청주문화대전’을 제작한 데 이어 “어르신 몇몇의 소소한 개인사보다 청주라는 지역이 걸어온 역사와 문화의 여정을 남기고 싶어” 책을 펴냈다.
청주/글·사진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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