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의 판례 들어
“내란음모·선동죄의 경우는
세부 실행계획 필요없다” 주장
변호인단 “재심서 깨진 논리…
사법정의 실현 역주행” 비판
법조계 안팎서도 “억지 주장”
“내란음모·선동죄의 경우는
세부 실행계획 필요없다” 주장
변호인단 “재심서 깨진 논리…
사법정의 실현 역주행” 비판
법조계 안팎서도 “억지 주장”
검찰이 이석기(52)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해 34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판결을 내란음모 구성요건의 근거로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변호인단은 “재심에서 무죄가 난 김 전 대통령 사건을 유죄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3일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검찰 구형이 있었고, 법원은 오는 17일 1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9일 수원지검과 변호인단의 말을 종합하면, 검찰은 최근 기존의 최종의견서 외에 ‘내란음모 및 선동의 법리에 대한 의견서’를 법원에 추가로 제출했다. 검찰은 이 의견서에서 “내란음모 및 선동죄의 경우는 세부 실행계획까지 모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을 예로 들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김 전 대통령 등을 지목해 김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무기징역으로,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고 대통령 퇴임 이후 재심을 청구해 2004년 1월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의견서에서 “1980년 대법원은 ‘김 전 대통령이 학원의 폭력시위를 조장하고 전국민적 봉기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해 내란음모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봤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2004년 재심 재판부는 ‘김대중 등의 내란음모는 전두환의 헌정질서 파괴범죄 저지를 위한 정당한 행위여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심 재판부도 당시 행위가 내란음모죄 구성요건에는 해당한다고 인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의 1980년 당시 행위는 일종의 정당행위로 죄가 되지는 않지만, 내란음모 자체는 실제 있었다는 논리다.
검찰 주장에 대해 법조계 안에서도 비판적인 반응이 많았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재심 판결로 깨졌고, 그 깨진 판결의 일부 논리를 원용해 판단해 달라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수원 노숙소녀 대법원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도 “검찰 주장대로라면 재심 판결문에 김 전 대통령의 행위가 내란음모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판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재심 재판부가 이 사건을 무죄로 판결한 이상 내란음모죄의 목적이나 구체성도 없다고 보는 게 판결 취지에 맞는다”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 등의 변호인단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근거로 든 것은 논리적 정당성도 문제지만, 사법정의 실현이라는 역사적인 측면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공소 유지를 맡은 수원지검 관계자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던 김 전 대통령 행동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변호인단은 지난해 5월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종교시설 모임이 일방적 정세강연이었고, 토론 내용에 반대한 사람도 있어 내란음모에 대한 의견 합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면 내란음모를 위한 의사 합치 단계에 이른 것이냐를 설명하려고 앞선 판례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인용했다는 얘기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일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의원에게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고 나머지 6명에 대해서도 징역 10~20년, 자격정지 10년을 각각 구형했다.
수원/홍용덕 기자, 김원철 기자 ydh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