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도시재생 협동조합 1호점 식당 ‘노송밥나무’에서 조애자씨(왼쪽 사진 오른쪽부터), 한복순 조합 이사장, 조청구씨가 생야채 비빔밥을 준비하며 웃고 있다. 전주/박임근 기자
[지역 쏙] 전주 옛 도심 주거지 1재생 현장
전북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들이 주민참여형 동네재생에 도전하고 나섰다. 전면 철거와 재개발 대신 빈집을 공동텃밭으로 가꾸며 협동조합 식당을 차렸다. 얼굴 없는 천사가 해마다 찾는 노송동의 주민들이 ‘천사마을’을 일궈낼 것인가.
전북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들이 주민참여형 동네재생에 도전하고 나섰다. 전면 철거와 재개발 대신 빈집을 공동텃밭으로 가꾸며 협동조합 식당을 차렸다. 얼굴 없는 천사가 해마다 찾는 노송동의 주민들이 ‘천사마을’을 일궈낼 것인가.
“식당 일은 처음이라 꽤나 걱정했죠. 몇달 해보니 이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요. 무엇보다 이 나이에 일자리가 생겨 좋아요.”
전북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식당 ‘노송밥나무’에서 일하는 조애자(74)씨의 말이다. 지난해 11월1일 문을 연 식당에서 조씨는 다른 직원 2명과 함께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지난 5일 점심때 가보니 비빔밥, 사골떡국, 김밥 등을 팔고 있었다. 간판에 적힌 ‘더불어 함께 사는…’ 글귀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여느 동네 식당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규모는 26.4㎡(8평)로 작지만, 이 식당은 ‘주민자립형 도시재생’이란 창대한 목표가 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출자금을 모아 차린 협동조합이다. 낡고 쇠락한 마을을 되살리고 싶어하는 주민 23명이 970만원(1계좌 5만원)을 마련했다.
비빔밥 등을 팔아서 어떻게 마을을 살리겠다는 것일까. 노송밥나무 협동조합 감사인 허정주(63)씨는 “지역 주민들이 도시재생에 꾸준히 참여하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했다. 노송동 일대 빈집들을 활용해 텃밭을 만들고, 여기서 키운 채소를 식당에서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송동은 전주 옛 도심에 있는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다. 1990년대 이후 사람들이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폐가, 빈집이 약 20곳으로 늘어났다. 버려진 집엔 벽이 허물어지고 쓰레기가 쌓였다. 빈집에서는 악취가 나고 벌레가 들끓었다. 가출청소년들이 빈집을 드나들며 폭력 등이 빈발했다. 주거환경이 악화되자 “애들을 키울 수 없다”며 떠나는 주민이 더욱 늘었다. 동네 상권도 덩달아 주저앉았다.
재생지구로 선정된 950여가구가 사는 노송동의 주거환경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낡은 건물들을 부수고 전면 재개발할 것을 기대한 일부 주민들은 “왜 빨리 철거를 안 하느냐”며 불만을 내기도 했다. 반면 옛 모습을 살리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를 바라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2000년 이후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며 전국 탐방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인 ‘전주 한옥마을’의 재생 경험도 주민들과 행정 부문에 영향을 줬다.
대표적 노후주거지 노송동에
폐가 허물어 공동텃밭 마련
주민출자 협동조합 식당 열어
무농약 야채로 비빔밥 팔아
친환경 도심재생 모델 주목
“주민 직접 참여해 사업추진
경제적 도움에 유대감 키워”
전주시는 2009년 1월 도심부 활성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그해 3월 각 분야 전문가 34명으로 정책·자문을 맡는 도시재생추진단을 창립했다. 그러고는 전면 철거 뒤 고층 아파트 건설이라는 다른 지역의 도심 재개발과는 달리, 옛 도심 노송동의 낡은 건축물을 고치고 길을 넓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천년 고도’ 전주시는 2000년대 초반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해 한옥마을 활성화, 옛 도심 특화거리(영화의 거리, 걷고 싶은 거리) 조성 등을 해왔다. 전주 한옥마을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비사업을 벌였고, 해마다 탐방객이 늘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0 한국관광의 별’로 뽑히기도 했다. 노송동 노후 주거지구 14만5000㎡는 2010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시범사업 지구로 선정됐다. 전주시는 이후 1년가량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주력하면서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주도하도록 했다. 김형조 전주시 도시재생과장은 “공무원들이 도시재생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문화·경제 분야 변화를 이끌도록 하는 종합적 도시재생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주민들이 도시재생 주민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마을재생의 구심점 구실을 할 동네주민협의회도 꾸렸다. 전주도시재생지원센터 곽희종(35) 연구원은 “주민들의 참여를 중시하다 보니 관 주도로 하는 것보다 사업 추진에 시간은 더 걸렸다. 하지만 주민들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통해 공동체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적극 나서면서 쇠락한 동네를 살리려는 주민들의 구상이 구체화됐다. 주민들은 마을의 흉물인 폐·공가 해법을 놓고 고민한 끝에 공동텃밭을 만들기로 하고, 이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식재료로 비빔밥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식당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세우기로 했다. 이렇게 협동조합 ‘노송밥나무’ 창업 아이디어는 물론 비빔밥 메뉴 선정, 식재료 조달 방안까지 마련한 것이다.
전주시는 이를 거들었다. 2012년 12월부터 노송동 폐가를 철거하고 차례로 텃밭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마련한 1호(302㎡), 2호(198㎡), 3호(235㎡), 4호(192㎡) 텃밭 가운데 1·2호에선 농사를 짓고 있고, 3·4호 텃밭은 올봄부터 경작할 예정이다. 퇴직한 주민 이동규(68)씨가 70대 이상인 다른 주민 4명과 공동텃밭 경작 팀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고구마를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씨는 “공동텃밭이 마을 사랑방 구실도 한다. 꽃과 넝쿨을 심어 여름에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된다. 텃밭에 모여 주민들이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농약을 쓰지 않고 손수 농사지은 텃밭의 채소들은 노송밥나무의 비빔밥 재료로 식탁에 오른다. 파프리카, 오이, 당근, 양배추, 상추 같은 채소가 싱싱한 ‘생야채비빔밥’은 5000원으로 다른 곳보다 싸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노송밥나무가 문을 연 지 석달 남짓, 아직은 손님이 하루 15~20명으로 많은 편은 아니다. 노송밥나무 협동조합의 한복순(52) 이사장은 “겨울이라 텃밭 농사를 쉬고 있다. 봄에 지역 주민들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듬뿍 가져오면 식재료비가 내려가 이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동네주민협의회 의장도 맡은 노송밥나무 감사 허정주씨는 “식당을 여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계속 꾸려나가니까 믿음이 생겼다. 지난달 열린 조합 정기총회에 참여도가 높았고, 회원 가입을 원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어서 회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노송밥나무는 앞으로 사업이 번창하면 2호점, 3호점을 낼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전주시는 노송밥나무 주변에 도시재생 거점센터 착공식을 했다. 사업비 90억원(국비 45억원)을 들여 내년 하반기에 완공된다. 연면적 4761㎡(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인 센터 건물에는 마을기업 등이 입주해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한다. 체력단련실·작은도서관 같은 주민복지 공간이 들어서고, 낡은 주택을 새로 지을 경우 임시 주거공간으로도 활용한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전주 한옥마을이 도시재생의 출발점이었다면, 도시재생 거점센터는 도시재생 활성화 제2의 도약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송동은 해마다 천사가 찾아오는 동네로 전국에 알려졌다. 노송동 주민센터엔 14년째 해를 거르지 않고 익명으로 기부하는 ‘얼굴 없는 천사’가 찾아오고 있다. 그런 자신을 감추는 나눔문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노송동에서, 주민들이 함께 텃밭을 가꾸고 식당을 운영하며 동네를 되살려 공동체를 일궈가는 실험이 한창이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폐가 허물어 공동텃밭 마련
주민출자 협동조합 식당 열어
무농약 야채로 비빔밥 팔아
친환경 도심재생 모델 주목
“주민 직접 참여해 사업추진
경제적 도움에 유대감 키워”
전주시는 2009년 1월 도심부 활성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그해 3월 각 분야 전문가 34명으로 정책·자문을 맡는 도시재생추진단을 창립했다. 그러고는 전면 철거 뒤 고층 아파트 건설이라는 다른 지역의 도심 재개발과는 달리, 옛 도심 노송동의 낡은 건축물을 고치고 길을 넓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천년 고도’ 전주시는 2000년대 초반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해 한옥마을 활성화, 옛 도심 특화거리(영화의 거리, 걷고 싶은 거리) 조성 등을 해왔다. 전주 한옥마을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비사업을 벌였고, 해마다 탐방객이 늘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0 한국관광의 별’로 뽑히기도 했다. 노송동 노후 주거지구 14만5000㎡는 2010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시범사업 지구로 선정됐다. 전주시는 이후 1년가량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주력하면서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주도하도록 했다. 김형조 전주시 도시재생과장은 “공무원들이 도시재생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문화·경제 분야 변화를 이끌도록 하는 종합적 도시재생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전주시 노송동 주민들이 운영하는 노송밥나무 식당. 전주/박임근 기자
주민들이 함께 경작하는 1호 공동텃밭. 전주시 제공. 전주/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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