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충북 옥천군 이원면 평산리 서정한씨의 밭에서 농민들이 모과나무 접목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전국 최대 묘목 생산·유통 단지인 이원면에선 요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노지 접목이 한창이다. 옥천/오윤주 기자
[충청·강원 쏙] 나무들의 ‘인큐베이터’ 옥천군 이원면
충북 옥천군 이원면은 봄을 기다린다. 전국 어린 나무(묘목) 유통의 70%를 점유하는 이곳에선 봄 식목철이 수확철이다. 70여년 대를 이어 묘목을 길러 마을을 지키고 키웠는데, 침체기에 접어들며 나이테 같은 주름이 늘고 있다.
충북 옥천군 이원면은 봄을 기다린다. 전국 어린 나무(묘목) 유통의 70%를 점유하는 이곳에선 봄 식목철이 수확철이다. 70여년 대를 이어 묘목을 길러 마을을 지키고 키웠는데, 침체기에 접어들며 나이테 같은 주름이 늘고 있다.
50년 전 충북 옥천군 이원면 ‘강씨 집’에서 티격태격 부자의 말다툼이 흙담을 넘었다.
“아부지, 제발 제 말 좀 들으세유. 한번만 눈 딱 감고 저를 믿어유.”
“야가 뭔 소리여. 멀쩡한 논에 뭔 나무를 심는다구 그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아들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딱 1년만이유. 딱 1년 해보고 안 되면 접지유.”
“그랴, 그럼 1년만이여.” 아들이 이겼다. 옥천군에서 ‘이원 묘목 2세대’로 불리는 충북농원 주인 강길웅(74)씨는 그해 논 3300㎡(1000평)에 복숭아나무 씨앗을 뿌리면서 묘목 농사를 시작했다. “더러 묘목을 키우기는 했지만 업으로 삼은 것은 다섯 집 정도였어요. 벼농사로는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 모험을 했지요. 꼭 1년 만에 한 주(그루)당 30원씩, 땅 한 평에 300원꼴을 받았으니 요즘 말로 대박이었지요.” 이 무렵 묘목 농사를 시작한 이원면 농민들은 비슷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이원 묘목’의 역사는 25년 더 거슬러올라가 1939년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옥천군 친환경농축산과장으로 정년퇴임한 이재하(61)씨는 문헌 연구를 통해 이를 증명했다. 이씨는 2005년 이원면장으로 부임해 이원 묘목 뿌리 찾기에 나섰다. 1964년 발행된 농촌계도지 <흙과 땀>에 실린 안헌귀씨의 글에서 ‘일본인 사토가 1939년 이원에서 복숭아 아접을 시작했다’는 내용을 찾아냈다. 이씨는 “사토가 묘목 재배를 했고, 이를 곽종혁·한을영·안헌귀씨 등이 잇고, 48년 충북도 농사시험장에서 우량종묘 생산법을 익힌 금경주씨 등이 싹을 틔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토가 당시 이원에서 6000평 정도 과수원을 운영했고, 일본에서 익힌 접목을 전수했다”고 보탰다. 일본에서 임업 기술을 익힌 금경주씨 등이 이원 묘목의 뿌리라는 주장도 있다. 13일 낮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에서 10분 남짓 달려 이원 묘목 재배단지에 닿았다. 하얀 들판은 폭설이 쌓인 게 아니라 비닐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느 농촌처럼 채소·과일 등이 아니라 묘목이 자라는 비닐집들이다. 싹 틔운 어린나무들이 봄나들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원면에서만 120농가가 173만여㎡에서 묘목 1200여만그루를 키우고 있다. 연매출 300억원으로 농가당 1억원 안팎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양지바른 맨땅에선 묘목을 나무와 접붙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농민은 “올핸 날이 푹해(따뜻해) 노지 접목이 평년보다 열흘 정도 빠르다. 묘목 농사 시작하기엔 좋은 날씨”라고 했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바삐 손을 놀리며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이것도 시기가 있어서 서둘러야 하지요.” 점심이 배달되자 그제야 허리를 폈다. 묘목은 봄 장사가 70%다. 3월 중순께부터 장이 서기 시작해 묘목 축제가 열리는 일주일(올해는 3월29일~4월5일)이 대목이다. 전국 묘목 상인들이 이곳에 몰린다. 전국 묘목 유통의 70%가 이원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옥천의 인물로 정지용 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씨를 거론하곤 하는데, 특산물로는 단연 묘목이 꼽힌다. 인구 4600명 남짓한 옥천군 이원면이 어떻게 전국 묘목 생산·유통의 중심이 됐을까? 농사짓기에 덜 좋은 환경을 역이용하는 ‘발상의 전환’에서 답을 찾는 이들이 있다. 김우현 옥천군 산림특구팀장은 “이원면은 사계절 볕이 좋고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지만 토질은 70% 정도가 모래 섞인 사질양토다. 벼농사 등에는 불리한데, 금강의 풍부한 물을 만나면 사질양토는 묘목의 생명인 잔뿌리를 내리는 데 최적의 조건이 된다. 고속도로·철도 등 사통팔달 교통도 한몫했다”고 했다. 30여년째 묘목을 키워온 합동농원 주인 정영배(59)씨는 “벼를 심었는데 생각만큼 잘되지 않아 묘목으로 바꿨더니 괜찮았다. 너도나도 묘목을 시작했고 대부분 성공해 소득이 높아졌다. 이원에는 농촌 총각이란 말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묘목 재배를 통해 주민 30% 이상은 3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고 있다. 1억원 이상 고소득 농민이 줄잡아 30여명이다. 벼농사에 견줘 단위 면적당 수익이 3~4배가량은 높다”고 거들었다.
이원면에선 묘목 3세대를 맞았다. 대를 이어 묘목을 키우고 파는 30~40대 묘목농장 대표들이 수두룩하다. 많은 농촌에선 50~60대가 ‘무늬만 청년회’를 꾸려가는데, 이곳에선 청년 40여명이 ‘진짜 청년회’를 꾸릴 만큼 신세대 농사꾼들이 들판을 지키고 있다. 95년엔 이원과수묘목협회를, 2003년엔 묘목영농조합법인 등을 설립했다. 1999년 봄 면사무소 마당에서 윷놀이로 시작한 묘목 축제를, 해마다 3만~4만명의 소비자에게 30여억원어치 묘목을 파는 대목 시장으로 발전시켰다.
정부도 이원 묘목의 성장 가능성과 가치를 주목해 2005년 9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원면 건진·이원·미동리 일대 197만여㎡를 묘목산업 특구로 지정했다. 옥천군은 같은 해 옥천읍 등 9개 읍·면 79만4314㎡를 옻산업 특구로 지정받아, 묘목과 함께 지역 특화작목으로 키우고 있다. 농가 230여곳이 103만㎡에서 옻나무 33만그루를 키워 식용·칠 등에 활용하고 있다.
옥천군은 2015년까지 162억3500만원을 들여 옛 경부선 철도 주변 이원면 이원리 4만2262㎡에 묘목 테마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숲 속 쉼터, 자연학습장, 묘목광장 등을 들일 예정이다. 이현수 옥천군 산림녹지과장은 “묘목을 산업뿐 아니라 국민 여가·관광 등에 접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원 묘목은 이웃 사랑과 남북 화해의 그루터기 구실도 했다. 2001년 북한 개성공단 주변에 묘목 3만1730주를 무상 지원한 데 이어, 2005년엔 북한 남포시에 3만150주를 무상 지원했다. 2000년 강원도 고성 산불지역(2만5810주)과 2005년 강원도 양양 산불지역(1만20주)에도 묘목을 건넸다. 김철기 묘목영농조합 초대 회장은 “북한 묘목 지원이 끊긴 것은 참으로 아쉽다.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 다시 한번 북한에 묘목과 재배 기술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묘목 산업이 성장만 거듭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침체기를 맞고 있다. 2012년 옥천군 농특산물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원면에서는 2008년 172농가가 229만8823㎡에서 묘목을 재배했지만 2012년엔 120농가 173만5709㎡로 농가와 면적 모두 급감했다. 이규순 옥천군 산림특구팀 주무관은 “기존 조사 때 포함시켰던 5년 이상 나무들을 제외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실제 묘목 재배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미림농원 주인 김성현(42)씨는 “묘목은 경기에 아주 민감하다. 1980~90년대엔 아주 좋다가 경제위기 때 망가졌다. 노무현 정부 때 혁신도시 건설 바람이 불면서 조경수 등이 잘 나가더니 이명박 정부 이후 수요와 주문이 뚝 떨어졌다. 인건비·자재값이 폭등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과장은 “묘목농업 급성장으로 농가와 재배면적이 너무나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 하지만 우량묘 생산 등으로 체질을 개선하면 미래 산업으로도 손색이 없다. 국외 시장 수출길을 여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옥천/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야가 뭔 소리여. 멀쩡한 논에 뭔 나무를 심는다구 그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아들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딱 1년만이유. 딱 1년 해보고 안 되면 접지유.”
“그랴, 그럼 1년만이여.” 아들이 이겼다. 옥천군에서 ‘이원 묘목 2세대’로 불리는 충북농원 주인 강길웅(74)씨는 그해 논 3300㎡(1000평)에 복숭아나무 씨앗을 뿌리면서 묘목 농사를 시작했다. “더러 묘목을 키우기는 했지만 업으로 삼은 것은 다섯 집 정도였어요. 벼농사로는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 모험을 했지요. 꼭 1년 만에 한 주(그루)당 30원씩, 땅 한 평에 300원꼴을 받았으니 요즘 말로 대박이었지요.” 이 무렵 묘목 농사를 시작한 이원면 농민들은 비슷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이원 묘목’의 역사는 25년 더 거슬러올라가 1939년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옥천군 친환경농축산과장으로 정년퇴임한 이재하(61)씨는 문헌 연구를 통해 이를 증명했다. 이씨는 2005년 이원면장으로 부임해 이원 묘목 뿌리 찾기에 나섰다. 1964년 발행된 농촌계도지 <흙과 땀>에 실린 안헌귀씨의 글에서 ‘일본인 사토가 1939년 이원에서 복숭아 아접을 시작했다’는 내용을 찾아냈다. 이씨는 “사토가 묘목 재배를 했고, 이를 곽종혁·한을영·안헌귀씨 등이 잇고, 48년 충북도 농사시험장에서 우량종묘 생산법을 익힌 금경주씨 등이 싹을 틔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토가 당시 이원에서 6000평 정도 과수원을 운영했고, 일본에서 익힌 접목을 전수했다”고 보탰다. 일본에서 임업 기술을 익힌 금경주씨 등이 이원 묘목의 뿌리라는 주장도 있다. 13일 낮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에서 10분 남짓 달려 이원 묘목 재배단지에 닿았다. 하얀 들판은 폭설이 쌓인 게 아니라 비닐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느 농촌처럼 채소·과일 등이 아니라 묘목이 자라는 비닐집들이다. 싹 틔운 어린나무들이 봄나들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원면에서만 120농가가 173만여㎡에서 묘목 1200여만그루를 키우고 있다. 연매출 300억원으로 농가당 1억원 안팎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양지바른 맨땅에선 묘목을 나무와 접붙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농민은 “올핸 날이 푹해(따뜻해) 노지 접목이 평년보다 열흘 정도 빠르다. 묘목 농사 시작하기엔 좋은 날씨”라고 했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바삐 손을 놀리며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이것도 시기가 있어서 서둘러야 하지요.” 점심이 배달되자 그제야 허리를 폈다. 묘목은 봄 장사가 70%다. 3월 중순께부터 장이 서기 시작해 묘목 축제가 열리는 일주일(올해는 3월29일~4월5일)이 대목이다. 전국 묘목 상인들이 이곳에 몰린다. 전국 묘목 유통의 70%가 이원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옥천의 인물로 정지용 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씨를 거론하곤 하는데, 특산물로는 단연 묘목이 꼽힌다. 인구 4600명 남짓한 옥천군 이원면이 어떻게 전국 묘목 생산·유통의 중심이 됐을까? 농사짓기에 덜 좋은 환경을 역이용하는 ‘발상의 전환’에서 답을 찾는 이들이 있다. 김우현 옥천군 산림특구팀장은 “이원면은 사계절 볕이 좋고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지만 토질은 70% 정도가 모래 섞인 사질양토다. 벼농사 등에는 불리한데, 금강의 풍부한 물을 만나면 사질양토는 묘목의 생명인 잔뿌리를 내리는 데 최적의 조건이 된다. 고속도로·철도 등 사통팔달 교통도 한몫했다”고 했다. 30여년째 묘목을 키워온 합동농원 주인 정영배(59)씨는 “벼를 심었는데 생각만큼 잘되지 않아 묘목으로 바꿨더니 괜찮았다. 너도나도 묘목을 시작했고 대부분 성공해 소득이 높아졌다. 이원에는 농촌 총각이란 말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묘목 재배를 통해 주민 30% 이상은 3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고 있다. 1억원 이상 고소득 농민이 줄잡아 30여명이다. 벼농사에 견줘 단위 면적당 수익이 3~4배가량은 높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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