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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십시일반 정성’ 학교·도서관…호아빈에 꿈이 자란다

등록 2014-03-16 21:38

베트남 호아빈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충북지회 예술가들을 활짝 웃으며 맞이하고 있다. 이 학교는 충북민예총 예술가들이 공연·전시 등으로 모은 성금 2500여만원으로 2007년 9월 개교했다.
베트남 호아빈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충북지회 예술가들을 활짝 웃으며 맞이하고 있다. 이 학교는 충북민예총 예술가들이 공연·전시 등으로 모은 성금 2500여만원으로 2007년 9월 개교했다.
[충청·강원 쏙] 베트남으로 간 한국 예술인들

송바(아버지 강)가 흐르는 베트남의 한 농촌 마을과 형편 넉넉지 않은 충북지역 예술인들이 10년째 해원과 상생의 정을 쌓아오고 있다. 학교를 지어주고 컴퓨터를 보내주고, 교류 공연도 하면서…. 왜일까?
베트남 푸옌성 뚜이호아 호아빈 마을에는 가난한 예술인들의 꿈이 자라고 있다. 푸옌성 성도로 인구가 80만명 남짓한 뚜이호아는 수도 하노이에서 남쪽 1200㎞, 호찌민에선 북쪽으로 550㎞ 떨어져 있다. 산을 등지고 바다를 앞에 둔 배산임수 형세로 우리의 전형적인 농촌과 닮았고, 드넓은 들판에는 송바가 유유히 흐른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의 주무대가 이곳이다. 전쟁 때 ‘따이한’(한국) 군인에게 1800여명이 죽은 아픔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충북지회(충북민예총)는 2004년부터 이 마을과 마실 다니듯 교류하고 있다. 예술인들은 마른 주머니를 탈탈 털어 학교를 짓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문화와 예술을 나눠왔다.

가난한 예술인들이 이역만리 숨겨진 이 마을을 어떻게 찾았을까? 우연이자 인연이었다. 참여정부 때 예술인들의 국제 교류가 유행처럼 번졌고, 충북민예총은 동남아, 그 가운데서도 베트남을 정했다. ‘반성과 성찰’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베트남 사회적 기업 ‘아맙’을 이끄는 구수정씨가 ‘따이한’과의 인연 등을 들어 푸옌성을 소개했다.

베트남 전쟁 때 우리가 진 빚을 잊지 않은 이쪽의 예술인들은 ‘미안함’을, 프랑스·미국으로 이어지는 100년 전쟁과 사회주의 테두리 안에서 외국인에 대한 경계가 몸에 밴 저쪽 마을 주민들은 ‘글쎄’라는 물음표를 지니고 있었다. 예술은 아버지(바)란 뜻을 지닌 강(송), 송바처럼 포용했다.

충북민예총 예술인 27명이 2005년 봄 ‘베트남 종전 30돌 푸옌성 대축제’를 찾았다. 이들은 푸옌성 친선조직연합, 문화통신청 등과 주민들이 건넨 조심스런 말 한마디를 기억했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줄 수 있을까요?”

그랬다. 뙤약볕을 피해 어린이들이 나무 그늘에서 어미의 모이를 기다리는 병아리처럼 모여 있던 것을 봤다. 비가 내리면 바지를 걷고 질척이는 마당을 가로질러 처마 밑으로 모여들어서도 빗방울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잃지 않는 배움의 열의를 지나친 적이 있었다.

충북민예총 예술가들이 지난해 3월 베트남 호아빈 학교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들은 공연·전시 등으로 성금을 모아 해마다 이 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충북민예총 예술가들이 지난해 3월 베트남 호아빈 학교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들은 공연·전시 등으로 성금을 모아 해마다 이 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충북민예총, 10년째 교류이어가
학교 지어달라는 마을 부탁받고
공연·전시·출판 인세로 기금 마련
학교명 호아빈, 현지어로 평화 의미
2007년 9월 개교뒤 450여명 입학
장학금·도서관 마련위해 모금공연

“그들의 부탁이 그리 유쾌하고 고마울 수 없었죠. 이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손을 내미는구나 하는 생각에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죠.” 박종관 충북민예총 이사장의 기억이다.

학생 300여명의 2부제 수업을 위한 교실 8칸을 지으려면 2500만원이 필요했다. 작업실 앞에 공과금 고지서가 쌓이기 일쑤고 “아빠, 천원만”, “여보, 이번달은…”이란 말을 귀에 달고 사는 가난한 예술인에겐 큰돈이었다. 하지만 힘을 냈다. 그림을 그리는 이는 전시를 했고, 음악인들은 공연을 열어 1년 동안 모은 1200만원을 2006년 2월 전달했다.

지금은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도 모금에 힘을 보탰다. 충북민예총 문학위원장으로 활동하다 몸이 좋지 않아 충북 보은 구구산방에서 글을 써온 도 시인은, 2006년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이 나오자 인세와 출판 후원금 등 858만7400원 모두를 내놨다. 그는 “아이들이 간만에 생긴 목돈을 주면 어떻게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아내는 말없이 지켜봐줬다”고 회상했다.

“우리 선배들에 의해 베트남 사람들이 쌓아둔 한을 후배들이 해원하고 상생하자는 뜻에서 성금을 모았지요. 자치단체나 기업체 등에 손을 벌릴 수도 있었지만 우리 힘으로 해보자고 나섰죠. 가난한 예술인들이 한푼 두푼 모은 것을 알고는 마음을 열더군요. 그게 보람이지요.”

충북민예총은 또 공연·전시 등을 열어 1300만원을 더 모아 전달했고, 2007년 9월5일 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교명은 ‘호아빈’이었다. 마을 이름이기도 한 호아빈은 베트남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우연인 듯하지만 기막힌 필연 같았다. 학교가 문을 여는 날 동네 잔치를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소·돼지를 잡고 음식을 내왔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한국 예술인들과 하나가 됐다.

김명종 충북민예총 사무처장은 “말만 다를 뿐 우리하고 똑같더라고요. 그날 정말 많이 먹고 많이 웃고 많이 즐거웠습니다”라고 했다. 푸옌성 인민위원인 부반투이는 “정말 당신들이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반짝하고 말 줄 알았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그는 베트남 전쟁 때 소년병으로 참전한 이다.

충북민예총 사람들은 또 공연·전시로 한푼 두푼 모아 호아빈 학교에 책상·걸상을 넣고 칠판을 걸고 컴퓨터까지 설치했다. 푸옌성 안에서도 손꼽히는 최신 시설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호아빈 학교 학생은 450명까지 불어났다.

윤석위(62) 충북민예총 고문은 ‘늦둥이’를 얻었다. 교류 공연을 하는 푸옌성 사오비엔 예술단 단장의 아들(18)를 양아들로 삼았다. 둘은 요즘 페이스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윤 고문은 “아이가 참으로 예뻐 ‘너 아들 할래?’ 했더니 금세 ‘아부지’란 말을 배워왔더라”고 했다. 시인인 윤 고문은 이 인연으로 베트남어를 공부해 베트남에서 시를 낭송하거나 베트남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곤 한다.

충북과 푸옌성의 10년 문화교류는 이제 두 지역의 사람을 잇고 있다. 홀수해엔 충북민예총이 베트남으로 가고, 짝수해엔 푸옌성 예술단이 충북을 찾는다. 지난해 3월엔 푸옌성 음악가 응옥꽝이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 곡을 붙이고 충북민예총의 춤·연주를 곁들인 연합 공연도 했다. 오세란 예술공장 두레 대표는 “5000여명의 관객이 광장에서 환호하고 한데 어울렸던 그 공연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흐를 정도다. 진심으로 공연과 우리를 받아들이는 듯해 감동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푸옌성 예술단의 충북 공연은 결혼이주여성 등 한국 안 베트남 출신들의 자랑이다. 방한 때마다 충북 청주·제천·옥천·청원 등지로 순회 공연을 한다. 10년째 한국 생활을 하는 전혜린(트란투에렌런)씨는 “고향 공연을 봐서 좋고, 친구나 이곳 가족 등에게 자랑할 수 있어 좋다. 늘 공연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학교 짓는 것도 버거워하던 가난한 예술인들은 요즘 호아빈 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준다. 이젠 친구도 생겼다. 2012년 1월 생긴 ‘호아빈의 리본’이다. 도종환 시인이 벗인 이철수 판화가 등과 함께 꾸린 호아빈 돕기 모임이다. 둘은 덜 가진 이들에게 재능 쓰기를 아끼지 않는 주변의 문화·예술 친구들을 모았다. 음악인 정태춘·박은옥 부부, 원모어찬스(정지찬·박원), 방송인 이금희·김제동씨, 만화가 고경일씨, 문화기획자 유수훈씨 등 20여명에 이른다. 도 시인은 “학교를 지었으니 이젠 공부하는 여건 만들기에 힘쓰려 한다. 장학금을 주고 한국에 유학하는 학생이 있다면 힘 닿는 대로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호아빈 도서관 건립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이철수 판화전’, 11월 ‘시·노래 콘서트’를 연 데 이어 오는 20일 저녁 7시 청주 예술의전당에서 정태춘·박은옥, 원모어찬스, 이승환의 ‘3색 콘서트’와 시인 도종환과 판화가 이철수의 이야기 마당을 연다. 돈이 모이면 10월께 도서관을 지으러 베트남으로 달려갈 참이다. ‘호아빈의 리본’ 간사 구실을 하는 유수훈씨는 “다들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 호아빈에 도서관도 짓고 책도 채워나갈 생각이다. 학교와 도서관은 호아빈의 꿈이기도 하지만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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