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대)의 일반화학 강의에서 학생들이 예습해 온 내용을 교수가 확인하며 함께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강의는 영어로 이뤄진다. 유니스트 제공
[함께하는 교육] 대학 길라잡이
개교 5돌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총장
개교 5돌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총장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대) 테크노경영관 강의실에서 지난 11일 오후 학생 200여명이 시험지를 앞에 놓고 문제 풀이에 한창이었다. 갓 입학한 새내기들의 일반화학 강의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영어로 제시된 문제를 옆자리 학생들과 의논하며 영어로 풀어나갔다.
강단 앞 스크린에는 3분으로 맞춘 타이머가 0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간이 다 되자 한 학생의 시험지 답안이 스크린에 나타났고 그 학생이 영어로 자신의 답안을 발표했다. 조교의 보충설명이 이어졌고, 다시 스크린에 타이머가 나타나면서 학생들은 새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이 과목을 맡은 이현우 교수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며 질문에 답해주곤 했다.
이 교수는 “수업시간 75분 가운데 절반만 교수가 직접 강의한다. 나머지 시간은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풀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학생 이인규(19)씨는 “교수님 강의는 학생들이 예습을 통해 수업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확인하고 요약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수업 방식을 이 대학에선 ‘뒤집힌 학습’(flipped learning) 모델이라고 부른다. 통상 교수가 먼저 강의를 하고 학생들이 따로 과제 등을 통해 응용력을 키우는 방식을 뒤바꿔, 학생들이 먼저 예습으로 수업 내용을 익힌 뒤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이 토론이나 문제 풀이를 통해 응용력을 키워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유니스트는 학생들의 예습을 돕기 위해 인터넷과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학습관리 및 교육 시스템을 갖춰, 교수들이 미리 강의안을 온라인에 올려놓으면 학생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교수는 “기존의 교수 중심의 전달식 교육이 학생 중심의 토론식 교육으로 바뀐 것이다. 학생들이 조교나 동료 학생들을 통해서 배우는 협력학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범수균 교수학습지원센터 팀장은 “수동적인 학습은 20%밖에 기억에 안 남지만, 능동적인 참여학습은 90%까지 기억에 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만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교수 2명이 맡을 수업을 교수와 교육 전담 조교가 나눠 맡아 비용도 줄이고, 교수도 강의 부담을 덜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육 시스템은 지난해 연세대와 이화여대, 포스텍 등 8개 대학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갈 만큼 대학교육 혁신 모델로 관심을 끌었다.
유니스트는 5년 전인 2009년 3월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을 내세우며 전국 첫 국립대 법인으로 문을 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지역 대선 공약 사업으로 추진됐다. 당시 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울산에 국립대가 없었다. 개교 전만 해도 지방 국립대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었다. 개교 때부터 카이스트 수준의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을 내걸며, 전공 구분 없는 신입생 선발, 토론식 수업, 모든 과목 100% 영어 강의 등 혁신적인 교육 방식을 추진해 주목받고 있다. 이런 혁신 교육 모델을 주도해온 조무제(70) 총장은 “설립 당시 국립대 구조조정이 거론되던 시기였다. 새로 국립대를 짓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통한 혁신적인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 방식은 유니스트가 추구하는 창의, 융합, 글로벌화라는 세 가지 교육 전략과 맞닿아 있다. 토론식 수업은 창의, 전공 구분 없는 신입생 선발은 융합, 영어 강의는 글로벌화와 관련돼 있는 것이다.
유니스트는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뽑은 뒤, 2학년부터는 9개 학부 20개 전공 가운데 2개 전공을 자유로이 선택해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교수들도 2개 이상 학부에 속한다. 조 총장은 “현대의 고도화된 산업기술 및 정보사회에선 기존 방식의 한 가지 전공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분야가 많다. 바이오 분야만 해도 생물학은 물론이고 수학과 물리학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융합은 과학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분야 간에도 강조된다.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지만 1학년 기초과정에서 학생들이 이수해야 할 교양과목에는 ‘나는 누구인가?’, ‘문학과 창의성’, ‘효과적인 소통’ , ‘리더십과 팀워크’ 같은 인문사회 관련 과목도 있다.
첫 국립대법인으로 문 열어
신입생 전공 구분 없이 선발
2학년 때부터 2개 전공 선택
전과목 영어 강의 전국 유일
등록금 낸 뒤 학점 따라 장학금
과학기술원으로 성격 전환 계획
전 과목 영어 강의는 이젠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조 총장은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을 교수로 초빙해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고, 자원이 풍부한 저개발국의 우수한 학생을 유치해 자원외교의 교두보로 키우는 데 모두 영어 강의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를 석좌교수로 영입하는 등 재직 교수 240여명의 12%인 30여명이 외국인 교수이다. 학부생 3700여명의 4%인 154명이 29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이다.
2011년 카이스트에선 성적 경쟁과 영어 강의의 중압감 등으로 학생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이 대학에선 학업 말고도 지식나눔 멘토링 같은 사회봉사활동을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부설 언어교육원에서 수준별로 영어 보충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조 총장은 “카이스트의 장학제도는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하는 징벌 성격이 있지만, 우리 대학은 학생들이 등록금을 낸 뒤 학점에 따라 이를 보전해주는 보상 성격이다. 성적과 무관하게 가정 형편으로 등록금은 물론 기숙사비까지 지원받는 학생도 한해 100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 방식은 학생들의 시험 감독을 없애는 효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시험에서 창의성과 응용력, 영어 실력까지 요구하니, 시험 감독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또 영어만으로 강의를 할 시간강사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시간강사 대신 영어로 토론수업을 할 수 있는 전일제 교육 전담 조교를 채용한다.
지난 2월 두번째 학부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286명 가운데 238명(83%)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외국에 유학한 5명을 뺀 나머지 43명 가운데 31명(72%)이 대기업에 취업했다. 학부생들은 지난해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앱을 개발해 아시아 청년 사회적기업가 프로젝트로 선정돼 벤처창업에 나서는가 하면, 2012년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열린 세계 대학생 창의력 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세계 800팀 가운데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이 우수 연구인력 육성을 위해 뽑은 ‘글로벌 박사 펠로십’에도 대학원생 14명이 선정돼 전국 대학 가운데 6위에 올랐는데, 대학원 재학생 수에 견주면 1위 격이다.
차세대 에너지인 2차전지 부문에선 전공 교수가 서울대나 카이스트보다 많은 9명이 있고 연구 실적에서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스탠퍼드대와 함께 세계 3위 수준에 올라 있다고 한다. 바이오·신소재 분야에서도 연구 인력을 확충해 국제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니스트는 개교 5돌을 맞은 올해 카이스트 같은 연구 중심 대학인 과학기술원으로 전환해, 2030년까지 세계 10위권의 특성화 연구 중심 대학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과학기술원이 되면 학생들이 병역 특혜를 받고 연구예산 지원이나 산학협력 프로젝트도 크게 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오는 5월부터 2000억원 규모 민간투자사업으로 2016년까지 새 첨단 연구단지를 짓고 주변에 관련 생산시설도 끌어들여, 연구개발 성과를 현장에 바로 접목하는 산학융합 중심의 첨단 벤처타운(유니스트 밸리)을 조성한다는 구상도 세웠다.
조 총장은 “차별화된 특성화 대학 육성 전략을 통해 미래형 교육 개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구고 있다. 10년이나 50년 뒤 울산은 물론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 기존 굴뚝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울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조무제 유니스트 총장. 유니스트 제공
신입생 전공 구분 없이 선발
2학년 때부터 2개 전공 선택
전과목 영어 강의 전국 유일
등록금 낸 뒤 학점 따라 장학금
과학기술원으로 성격 전환 계획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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