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경찰서 내북파출소 천웅필 경사가 지난 17일 오후 일을 하다 술을 마신 농민 김아무개(77)씨를 순찰차에 태운 뒤 자신이 직접 경운기를 대리운전하고 있다. 내북파출소 제공
보은경찰, 술마신 농민 연락오면
대신 운전해주거나 귀가 도와줘
대신 운전해주거나 귀가 도와줘
“경운기 대리운전 시키신분?”
충북 보은경찰서가 봄 농번기를 맞아 농민들의 경운기 교통사고를 막으려고 ‘경운기 대리운전’을 시행해 농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운기 대리운전은 농촌 들녘에서 일을 하다 술을 마신 농민이 경찰서 지구대나 파출소 등에 연락하면 경운기를 운전할 수 있는 경찰관이 경운기를 집까지 운전해 주거나, 농민을 순찰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제도다.
보은경찰서는 지난 17일부터 경운기 대리운전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하루 1~2건씩 대리운전 ‘콜’(전화)이 울리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보은 내북파출소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내북면 봉황리 밭인디 막걸리 한잔 했네. 경운기 좀 델다 줄랑가.” 전화를 받은 천웅필 경사는 순찰차를 몰고 밭으로 달려갔다. 술이 거나하게 오른 어르신은 순찰차에 태우고 자신은 경운기를 몰고 집까지 가 주차했다. 천 경사는 집에서 농사를 짓는 터라 경운기 운전이 익숙하다.
보은경찰서가 경운기 대리운전을 시작한 것은 경운기는 도로교통법이 정한 ‘자동차’가 아니라 농업기계화촉진법에 따른 ‘농기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기계인 경운기는 면허증이 없고,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처벌할 규정이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농민들은 들녘에서 경운기로 일을 하다 술을 마신 뒤에도 운전대를 잡기 일쑤였다.
김진광 보은경찰서장은 “지난 1월에도 경운기를 몰다 90대 노인이 숨지는 등 경운기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직원들과 상의 끝에 대리운전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농민이 술을 마시면 경운기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것이 사고를 줄이는 길이다. 경운기를 현장에 두고 순찰차로 농민을 모셔드리는 게 우선이지만 농가에서 가까우면 직원들이 대리운전 형태로 집에 경운기를 몰고 가 사고를 미연에 막고 있다”고 말했다.
보은경찰서는 최근 지구대·파출소 등에서 경운기를 운전할 수 있는 직원까지 파악했다. 농촌 들녘에는 ‘몸이 아프거나 술을 드시면 가까운 경찰서에 연락하세요’라는 펼침막을 내걸고 ‘콜’을 기다리고 있다.
보은/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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