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의 빈소가 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나눔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 이옥선 할머니가 찾아와 헌화하고 있다. 성남/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봉사온 학생들 외국어 알려주고
자신 닮은 ‘소녀 아리랑’ 즐겨 불러
자신 닮은 ‘소녀 아리랑’ 즐겨 불러
19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91) 할머니가 8일 새벽 노환으로 숨졌다.
일제강점기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배 할머니는 친구 봉순이네 집에 놀러 갔다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친구와 함께 정신대에 들어갔다. 1942년 친구 봉순이와 함께 그가 끌려간 곳은 중국 만주였고, 몸도 마음도 일본군에 의해 짓밟혔다. 배 할머니는 만주에서 3년 넘게 일본군한테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했다. 국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건너가 엔카(일본 대중가요) 가수 생활을 하다 1980년대 초 귀국했다. 하지만 어렵게 모은 돈을 친척한테 사기를 당해 다 잃은 뒤 그는 1997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입소했다.
배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서 같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자신이 잘하는 노래와 미술, 장구로 늘 웃음과 위로를 주었던 탓에 나눔의 집 ‘가수’이자 ‘예술가’로도 불리었다. 일본어와 중국어,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등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배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 봉사하러 온 고교생들에게 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할머니는 숨지기 전 “봉숭아꽃 꽃잎 따서 손톱 곱게 물들이던 열두살 그 꿈은 어디 갔나”라는 <소녀 아리랑> 노래를 즐겨 불렀다. 지난 10여년 동안 배 할머니와 함께해온 안신권(52) 나눔의 집 소장은 “지난해 한 스님으로부터 할머니가 시디 1개를 선물받았는데 그 안에 <소녀 아리랑> 노래가 있었다. 할머니가 노래를 들으시더니 ‘노래 가사가 꼭 나랑 같네’라며 한달여 동안 가사를 전부 다 외우셨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매주 수요일 열리는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던 배 할머니는 3년 전부터 몸이 아파 참석하지 못했다. 안 소장은 “할머니가 평소 눈을 감기 전에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라고 말했다. 배 할머니의 사망으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다.
배 할머니의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 분당차병원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7시 ‘나눔의집장’으로 열린다.
광주/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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