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주검 발견에서 확인까지
지난달 12일 순천서 사체 발견
유류품 간과하고 단순변사 처리
DNA 분석 40일 동안 헛수색
‘유병언 유전자’ 통보 상황 급반전
어제 집게손가락 지문 최종 확인
저서 제목 새긴 가방 등 정황증거
지난달 12일 순천서 사체 발견
유류품 간과하고 단순변사 처리
DNA 분석 40일 동안 헛수색
‘유병언 유전자’ 통보 상황 급반전
어제 집게손가락 지문 최종 확인
저서 제목 새긴 가방 등 정황증거
전남 순천시 송치재 부근 매실밭에서 지난달 12일 발견된 주검이 40일이 지나서야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확인됐다.
순천경찰서는 22일 브리핑을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광주분원의 유전자(DNA) 분석과 경찰 자체적으로 진행한 지문 대조를 통해 주검의 신원이 유씨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12일 오전 9시6분께 순천시 서면 학구리 산자락에 있는 박아무개씨의 매실밭에서 심하게 부패된 주검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경찰은 강력팀, 과학수사팀, 파출소 등 소속 경찰관 10여명을 보내 신원 확인에 나섰다. 하지만 주검이 80% 정도 부패됐고 신원을 확인할 단서가 없어 누군지 밝히지 못했다. 신고자인 박씨는 “발견 당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가 심했으며 흰색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고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13일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순천 성가롤로병원에서 부검을 했다. 이때도 지문이 나오지 않자 주검의 대퇴부 뼈와 머리카락을 국과수 광주분원에 검삿감으로 보내 유전자 감식을 맡겼다. 이어 18일과 22일 두차례에 걸쳐 비교적 건조한 편인 왼손의 지문을 채취하려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경찰과 검찰은 주검 행색이 초라했고 부검에서 특이점이 나오지 않자 단순 노숙자 변사 사건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주검의 부패 정도로 미뤄 숨진 지 6개월 정도는 지난 것으로 속단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유씨가 마지막으로 행적을 감춘 송치재 별장에서 2.3㎞밖에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나이와 체구가 비슷한 주검이 발견됐는데도 이를 소홀히 넘겨버렸다.
경찰은 안일한 대응으로 수사 장기화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세월호 실종자 신원 확인 과정에서 보듯, 주요 사건은 의뢰 당일에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건은 국과수에서도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감식 시간을 충분히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은 신원을 확인해 사건을 종결하는 데만 급급해 유씨의 주검을 확보하고도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순천경찰서 과학수사팀의 한 경찰은 “별도의 협조를 요청하지 않은 일반 사건의 유전자 분석에는 통상 시료가 혈액일 때 10여일, 뼈일 때는 40여일이 걸린다. 주검에 특이점이 없어 별다른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1일 국과수가 이 주검의 유전자가 유씨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하면서 검찰과 경찰은 화들짝 놀랐다. 국과수는 21일 저녁 8시께 주검의 유전자 정보가 은신처였던 송치재 별장에서 채취한 유씨 체액과 경기도 안성 금수원 유씨 사무실에서 채취한 유전자 정보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경찰청에 통보했다. 이 감정 결과를 보강하기 위해 유씨의 형 유병일씨의 부계 와이(Y)염색체와 모계 엑스(X)염색체(미토콘드리아 확인법)를 대조했다. 두 시료는 동일한 부모를 둔 형제의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인 절차에 따른 유전자 분석이 끝날 때까지 40일을 기다렸던 경찰은 뒤늦게 사실 확인을 서둘렀다. 순천경찰서는 22일 새벽 순천장례식장에 있던 주검을 다시 확인했다. 경찰은 주검에서 오른손 집게손가락의 지문을 가까스로 채취했다. 이 지문은 주검이 유씨임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또 경찰은 보관중이던 유류품 10여점을 다시 확인했다. 유류품에서는 주검을 유씨로 추정할 수 있는 몇가지 정황증거들이 발견됐다. 구원파 계열사인 ㈜한국제약에서 생산한 길이 8.5㎝가량의 에이에스에이(ASA) 스쿠알렌 빈 병 1개가 들어 있었다. 또 천가방 안쪽에는 유씨의 저서 제목인 ‘꿈같은 사랑’이라는 글자가 가로로 새겨져 있었다.
주검이 입고 있던 옷가지도 노숙자가 입기 어려운 고가품이었다. 이탈리아제 ‘로로피아나’ 파카를 걸치고 있었다.
경찰은 순천 일대에서만 송치재 인근 5곳에서 검문을 하고, 연인원 8000여명을 동원해 수색을 했지만 정작 등잔 밑을 놓치고 말았다.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송치재 주변의 구원파 관련 시설 143곳을 대상으로 수색을 벌였으나 유병언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초동수사가 완벽하지 못했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22일 수사 부실의 책임을 물어 우 서장을 직위해제했다. 경찰은 이날 유씨 주검의 2차 정밀 부검을 국과수 서울분원에 의뢰했다. 경찰은 국과수의 2차 부검이 완료되면 사망 원인, 사망 시간, 타살 여부 등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씨를 붙잡기 위해 유례없이 검·경·군을 동원하고, 반상회를 열어 수배 전단을 돌리고, 포상금 5억원을 걸었지만 검찰과 경찰은 ‘결국 유령만 쫓아다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순천/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검경의 유병언 전 회장 추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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