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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농진청 ‘수원 시대’ 막내렸다

등록 2014-07-24 19:51수정 2014-07-24 22:10

발족 52년만에 수원 떠나 전주로
80년대 쌀 자급자족 ‘녹색혁명’
고소득 작물 개발 등 농업 메카
“정조 때 서호(농업용 저수지)를 만든 것부터 따지면 수원이 200년 된 한국 농업의 메카인데….”

1987년에 농촌진흥청에 쌀 연구사로 첫발을 디딘 최임수(56) 식량종자사업단장은 ‘수원 시대’를 마치고 전북 전주로 이전하는 농진청을 바라보면서 많은 회한이 다가오는 듯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통일벼를 생산해낸 선배 연구가들을 이어 그는 이곳 수원 농진청에서 고품질 일반쌀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수원에서 농진청이 해낸 최고의 일은 1980년대 ‘녹색혁명’이었죠. 쌀을 자급자족하면서 배고픔을 덜었으니까요.” 쌀이 부족해 일주일에 하루는 보리 혼식을 해야 했던 ‘무미일’ 제도가 폐지된 게 1977년 1월이었다. 최 단장은 “1992년에 쌀이 남아돌면서 통일벼 수매를 하지 않았다. 다수확 품종 대신 고품종 일반미를 육종하고 1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냉해에 견디는 쌀 품종을 이곳에서 개발해냈을 때 참 가슴 벅찼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1990년대에는 농산물시장의 개방 파고에 맞서 화훼와 채소 등 고소득 작물의 ‘백색혁명’을 이뤄냈다. 그는 “수원을 떠난다고 농업의 중요도나 이곳에서 흘린 선배 연구가들의 땀이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농진청이 전북 혁신도시로 이전을 시작했다. 1962년 발족하고 52년 만이다. 일본이 수원에 권업모범장을 설치한 1906년으로 거슬러 가면 108년 만이다. 권업모범장이 해방 직전 농사시험장으로, 그리고 다시 농진청으로 바뀌면서 수원에는 한국 농업연구에 밤낮없이 매달린 수많은 농업 연구가들의 땀이 어렸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전신인 수원농림전문학교(3년제)가 1918년에, 수원농고의 전신인 수원공립농업학교가 1936년에 각각 문을 열면서 농업 연구의 메카 노릇을 해왔다. 지난 21일 시작된 농진청 이전은 다음달 1일까지 1차로 본청 이전이 이뤄진다. 이어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 등 4개 국립연구원들이 내년 2월 말까지 모두 이전한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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