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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냥·수눌음·분짓 정신 깃든 제주유물 기증하니 행복”

등록 2014-07-30 18:49수정 2015-01-15 14:44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짬] 평생 모은 유물 제주대에 건넨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그는 살아있는 제주도 민속연구의 전설이자 선구자다. 후학들이 제주도 민속학을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그를 넘어서는 수준의 현장조사를 하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반세기 넘게 제주도 민속을 기록해 온 그가 넉넉한 웃음을 지을 때면 영락없는 제주 돌하르방이다. 지난해 6월 뇌졸증으로 쓰러졌던 후유증으로 거동이 조금 불편한 듯 보였지만 그의 웃음은 여전히 호탕했다. ‘한집’ 진성기(78·사진) 제주민속박물관장이 최근 평생을 수집해온 자료와 유물들을 모교인 제주대에 무상 기증하기로 했다. 모두 그의 손때가 묻은 피붙이 같은 유물과 자료들이다.

무속악기·사진·책·녹음자료 등
평생 모은 4만여점을 모교에
1956년 대학때부터 민속조사
주민들 얘기 꼬박 받아적어
“전통문화는 현재 문화의 원형
인간성 상실의 위기 풀 열쇠”

“유물들을 모으고 박물관을 열기까지 모교인 제주대에서 많이 배우고 영향을 받았어요. 대학 시절 민속을 공부하면서 유·무형의 제주 민속문화를 집대성해보겠다고 결심했는데 1차 목표는 거의 완성된 셈입니다. 이제는 후배들이 연구를 계속해서 전통문화를 보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학문의 바탕을 채워준 모교에 기증하기로 했어요.”

‘국내 사립박물관 1호’이자 올해로 개관한 지 50돌을 맞은 제주민속박물관을 일궈온 진 관장은 28일 제주대에서 ‘제주민속박물관 소장품 기증 협약식’을 했다. 유물은 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무신궁(당신상) 140여점과 울쇠(무속악기) 등 1만여점이며, 자신이 직접 채록하고 정리해 펴낸 출판물, 현장조사의 결과물인 사진과 녹음자료 등을 합하면 3만여점에 이른다.

“평생 모아온 유물을 기증하는 게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진 관장은 “내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이었다. 기증하고 놓아버리니 이렇게 편하고 가뿐하고 행복한 데 말이다. 기증한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제주도의 민속문화와 유물들이 도민들 삶의 뿌리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가꿔 나가야 하고, 도민이 살아가는 자양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56년 제주대 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우리 것’에 대한 귀중함을 깨닫고 민속조사에 나섰다. “제주도의 문화는 해양도서 고유의 풍속에다 한반도의 문화와 몽골의 지배 영향 등으로 복합적이고 독특한 문화가 형성돼왔다. 이 문화가 세계 인류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조사를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인 58년 <제주도 민요>(제1집)와 <제주도 속담>(제1집)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한라산 옛말>(제주 사람들의 삶)까지 모두 32권의 제주도 민속관련 책을 내놓았다. 50년대 말의 민속조사는 쉽지 않았다. “녹음기나 카메라도 없었고, 자동차도 없었다. 노트를 들고 다니며 주민들이 얘기한 내용을 꼬박꼬박 받아 적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속도는 느렸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제주도는 그 자체가 민속학 교재였고, 민속백과사전이었다. 마을 주민들을 만나 민요와 신화, 전설, 풍습 등을 들을 때면 민속학 교재의 참고문헌을 읽어내려가는 것 같은 후련함을 만끽했다. 노트 기록만으로 보면 제주도를 200바퀴 돌아다닌 것 같다고 회고했다.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듯이 제주민속을 공부하다 보니 그 중심에는 무속이라는 우리 문화의 뿌리가 있음을 알게 됐다”는 그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컴퓨터의 지배를 받는 인간성 상실의 위기 속에서 전통문화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민속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다. 박물관 전시실로 이끌어 가장 먼저 보여준 색바랜 병풍만해도 그렇다. “30여년 전이야. 신구간(제주의 전통적인 이사철) 때 누가 버린 것을 묻고 물어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보물이지. 민초들이 마음가는대로 갈겨서 쓴 건데 유명인들이 쓴 서화도 많지만 이 병풍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오랜 현장조사와 연구를 통해 다듬어진 민속문화에 대한 철학과 신념은 확고하다. “민속문화 연구는 현재의 문화현상에 대해 과거로부터 변천과정을 찾아내고, 그 원형을 밝혀내는 발견의 과학이다. 오늘날 제주도의 문화는 풀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나막신, 정당벌립, 대패랭이 등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제주문화의 특성은 한라산과 바다 사이에 건강한 제주도민의 정신이 묻어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제주정신은 “조냥(근검절약), 수눌음(상부상조), 분짓(자주·자립)정신”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물론 지난 세월 굴곡도 겪었다. 64년 450여점의 유물을 바탕으로 제주시 건입동에 제주민속박물관을 개관했다. 70년에는 제주시 일도2동으로 규모를 확장해 박물관을 옮겼으나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79년에는 각계의 반대에도 박물관 자리가 제주도립민속자연사박물관 터로 수용되는 바람에 지금의 제주시 삼양3동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

허향진 제주대 총장은 “모교 출신인 진성기 관장님의 기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학 박물관에 ‘한집 제주민속관’을 마련하고 출판 도서를 전집으로 제작해 훌륭한 뜻을 기리겠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제주대는 유물 목록 작성과 훈증처리 등을 한 뒤 올해 안에 이전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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