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의 ‘협치’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7일 이기승 제주시장 내정자의 뜻하지 않은 낙마로 협치가 중대 기로에 섰다. 민선 6기 원희룡 제주도정에 거는 제주도민들의 기대는 컸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관록을 쌓은 중견 정치인의 등장은 제주도민들의 전폭적 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인사와 관련한 논란이나 잡음이 잇달아 불거져 취임 100일을 앞둔 원 지사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법적 뒷받침은 없지만 ‘협치’라는 큰 틀에서 제주도와 도의회가 인사청문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뒤 이뤄진 첫 청문회에서 시장 내정자가 낙마한 데 대해 원 지사는 “시정에 공백이 최소화되게끔 비상한 태세로 임하겠다”고 했지만 꽤 충격을 받은 듯하다.
제주시장(내정자 포함)의 잇단 낙마는 ‘인사참사’로 거론될 만큼 원희룡 도정의 인사검증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줬다. 원 지사는 지난달 한 방송토론에서 진행자가 “시장 내정자가 음주사망 교통사고를 냈다”고 하자 “다 알고 있다. 그 문제는 도민들의 뜻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가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원 지사의 참모나 조언그룹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협치를 내세운 원 지사는 애초 지난 7월 시민단체 대표 출신을 제주시장에 임명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취임 직후 터진 시장 개인의 부동산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았고, 한달여 만에 사퇴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협치가 흔들렸다.
인사 잡음은 지난 8월 말 제주도가 산하 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장들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할 때도 나왔다. 해당 기관의 정관이나 규정에 따라 사표를 제출하는 게 순리인데도 제주도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적으로 사표를 강요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가 모두 전문성 있는 인사로 채워질 것 같지는 않다. 6일 제주에너지공사 사장에는 제주도청 국장급 출신이자 건설업체 상임고문으로 있는 이성구(65)씨가 내정됐다. 이씨는 주로 교통행정을 담당했지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17년 전 에너지 관리계장(1년10개월)을 역임한 게 전부다. 에너지 분야 전문가나 경력자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수준이다. 그도 도의회 인사청문회를 넘어야 한다.
지난 8월 중순 개방형 직위인 제주도미술관장 선정을 둘러싸고도 손팻말 시위와 항의 광고 등이 이어져 도의회가 감사위원회에 감사를 의뢰한 상태다.
비록 실패했지만 원 지사가 ‘1등 선거공신’이 꿰차던 시장 자리에 ‘협치’를 내세워 생각지도 못한 인사들을 임명한 것은 새로운 시도다. 그러나 원 지사가 선의를 가지고 협치를 하려 해도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참모나 조언그룹이 원 지사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판단과 책임은 원 지사 몫이다. 그의 실험이 중단될지 계속될지 주목된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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