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도 이전 계획에는 절대 차질이 없다더니….”
24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청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마친 ‘동두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 한종갑 위원장은 “한마디로 배신감을 느낀다. 정부가 이전을 약속해놓고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미 양국이 지난 23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2020년대 중반 이후로 미루고 주한미군 2사단의 210화력여단을 동두천에 잔류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동두천 시민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 위원장은 미군 잔류 소식을 국방부가 23일 달랑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국방부 류제승 국방정책실장 명의의 문자에는 “210포병여단을 2020년까지 현재 위치에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군이 잔류하는 동두천 캠프 케이시는 전체 면적이 4620만㎡로, 시 중심부에 위치한 ‘노른자위’ 땅이다. 이곳에는 현재 미군 2사단 산하 포병여단 2000여명과 1보병여단 4500여명이 주둔 중인데, 2016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동두천시는 반환될 미군공여지 중 1000만㎡를 산업단지로 조성해 대기업을 유치한다는 내용의 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경기도를 거쳐 안전행정부 승인까지 받아둔 상태였지만 이번 미군 잔류 결정으로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였다.
동두천시는 한국전쟁 뒤 60년간 시 전체 면적의 42.5%인 40.63㎢를 미군기지로 내주면서 한국의 대표적 ‘기지촌 도시’라는 오명과 함께 수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도시가 낙후돼 재정 자립도가 20%에 불과하다.
오세창 동두천시장은 “미군 잔류는 동두천 시민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시장은 “반세기 넘게 미군기지가 있었지만 정부 지원은 없었다. 평택은 미군기지가 옮겨 간다고 18조8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동두천은 미군기지가 떠나는 지역이라고 10원 한장 안 줬다. 그래도 우리는 참았다”며 “오는 2016년까지 간다고 했으면 가야지, 다시 잔류한다고 하면 개발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 미군기지를 남기려면 평택처럼 지원하라”고 말했다.
떠난다던 미군기지가 다시 주저앉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오전 10시30분 동두천지역 53개 지역사회단체들과 상인, 오세창 시장과 시의원, 도의원들이 시청에 모여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회의 뒤 “정부 발표는 동두천 시민을 무시한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미 2사단의 평택 이전 △반환기지에 대한 개발계획 수립 및 동두천 회생방안 마련 △용산·평택에 준하는 지원대책을 정부에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곧 대규모 집회와 상경 투쟁에도 나서는 등 항의 강도를 높여 가기로 했다.
경기도는 “동두천시가 미군 주둔으로 낙후됐고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지역 개발 기대가 컸는데 이제 와 원점이 된다면 이에 상응하는 국가 차원의 지원과 보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미군기지가 2016년까지 이전하는 평택시는 담담한 표정이다. 평택시 한미협력단 관계자는 “미군기지 70%가 조성이 끝났다. 일부 부대가 잔류한다고 큰 영향을 받을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두천/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동두천시 미군 공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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