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집권자들이 한 걸음씩 양보하고 교류를 한다면, 머지않아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실크로드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정수일(81·사진)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문명을 교류하면 모든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 정치도 문명의 하나이다. 당연히 교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원대 기초교육원,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경남지방변호사회 등은 지난 20일 저녁 경남 창원시 창원대 22호관에서 ‘명사 초청 교양특강’을 열었다. 강연자로 초청된 정 소장은 ‘우리에게 실크로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2시간 넘게 열정적인 강의를 펼쳤다.
정 소장은 “한민족에게 실크로드는 뿌리를 내리게 한 길, 세계와 소통시킨 길, 위상을 드높인 길”이라며 실크로드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그는 ‘어디로 가려는지 알고 싶거든 어디서 왔는지 되돌아보라’는 <논어>의 문구를 인용하며 “실크로드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재인식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2006년 9월 실크로드학교, 2008년 6월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열었고, 수십차례 실크로드 답사를 통해 지난해 11월 <실크로드 사전> 등 실크로드 관련 많은 서적을 펴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를 ‘실크로드 석학’보다 ‘남파간첩 깐수’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1934년 중국 연변 용정에서 태어났다.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중국 공산당 첫 국비 국외유학생으로 선발돼 이집트 카이로대에서 유학했고, 1960년대 초반 중국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1964년 북한으로 들어가 북한 국적을 취득하고 평양외국어대 교수를 역임했다. 80년대 초반엔 다시 외국으로 나가 튀니지대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지냈다.
그는 1984년 북한 지령을 받고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레바논 출신 필리핀인 유학생으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와,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88년 단국대 초빙교수가 됐다. 1996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붙잡혀 12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다가 2000년 8월15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2003년 4월30일 특별사면과 복권이 됐고, 같은 해 5월14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영어·아랍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페르시아어·말레이어·필리핀어 등 12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중국·북한·레바논·필리핀·한국 등 5개 나라 국적을 가졌었거나 가지고 있는 ‘세계인’이다.
“나의 자식들은 모두 북한에 있습니다. 하루빨리 통일을 맞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정 소장은 “영어에는 ‘교류’를 뜻하는 단어가 없다. 서구에는 일방통행만 있을 뿐 교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동양의 우수한 전통인 교류는 이질감, 즉 다름을 극복하는 것이다. 지금 남북한 사이에 간절히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창원/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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