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장수는 고기를 썰면서 여러 생각을 정리합니다.”
고기 장수가 책을 냈다. <썰며 쓴 삼겹살 이야기>(도서출판 고두미)다. 고기를 쓸면서 생각을 정리한 이는 김동진(50·사진)씨다.
충북 청주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에서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1991년부터 11년 동안 <서울신문>에서 기잣밥을 먹은 전직 기자다. 날카로운 펜으로 부드러운 직선의 필치를 자랑하던 그는 지금 날카로운 칼로 부드러운 삼겹살을 저미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내 어디에 이런 집요함이 있었나 할 정도로 삼겹살 거리 하나에 집착했어요. 보고, 만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의 귀결점은 삼겹살 거리였습니다.”
그는 지역 신문 <충북일보> 등에 기고한 청주와 삼겹살에 관한 이야기와 평소의 생각들을 책에 담았다. 기자를 거쳐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등 말과 글, 이슈와 생각 등을 좇던 그는 ‘청주에도 전국적인 먹자 골목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 하나로 삼겹살과 인연했다.
그는 2010년 10월께 한범덕 전 청주시장을 찾아가 청주 삼겹살 거리 조성을 제안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청주 돼지고기는 고소하고 노린내가 적어 임금 수라상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1960~70년대 전국 3대 우시장으로 꼽히던 청주를 찾은 상인 사이에선 삼겹살이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청주만의 절인 간장 삼겹살집 등 삼겹살 전문 식당 500여곳이 성행할 정도로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또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곧 소통 언어잖아요. 서민 시대 청주와 삼겹살이 대세입니다.”
그는 문헌까지 뒤져 청주 삼겹살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역설했다. 그의 제안과 한 시장의 결단으로 청주 삼겹살 거리 조성이 시작됐다.
어디에 삼겹살 거리를 만들까? 논의 끝에 청주 서문시장으로 정했다. 옛 청주읍성의 서문 쪽에 자리잡은 서문시장은 5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 최고의 시장이었다. 1990년대까지 그야말로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이 붐볐다. 1995년 시장 근처에 있던 청주경찰서, 99년 버스터미널이 떠난 데 이어 2002년 12월 시장 코앞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30여곳이 성업하던 시장 점포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마침 삼겹살, 순대 전문 식당 등도 자리잡고 있었다. 청주시는 문 내린 시장 셔터를 올려주기로 했다. 이른바 ‘시장살리기 마중물 프로젝트’였다.
그는 뜻있는 이들과 삼겹살 포럼까지 꾸려 힘썼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직접 삼겹살 식당을 내고 청주삼겹살거리상인회 총무까지 맡아 삼겹살 거리 안착에 동분서주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등을 돌리는 상인을 돌려 세웠고, 해마다 3월3일 삼겹살 데이라는 축제를 열고, 품질 관리와 삼겹살 거리 활성화 등을 위해 애썼다.
“갈 길이 멉니다. 아직 변변한 주차장도 만들어지지 않은 데다, 지원과 관심이 부족합니다.”
그의 책은 삼겹살처럼 세 부로 나뉘어져 있다. 한 겹에는 청주와 삼겹살, 그리고 삼겹살 거리 조성과 관련한 우여곡절을 담았다. 두 겹에는 삼겹살 거리 초대 회장을 맡은 전직 근대 5종 선수 김상돈,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해 유명세를 탄 금순이·은순이 자매 등 그가 만난 삼겹살 거리의 사람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마지막 세 겹에는 그가 고기를 썰면서 맞은 사람과 소소한 생각들이 육즙처럼 배어 있다. 그는 호를 삼겹을 뜻하는 ‘삼중’으로 정했다.
“삼겹살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혀주고, 또 이어주기도 합니다. 소통하려면 삼겹살 드셔야 합니다. 요즘 삼겹살 거리가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어 있어 채울 것이 많은 상태지요. 고기를 썰 때 조급증·욕심·심약함 등 딱 세 겹은 잘라냅니다. 고기는 칼을 따라 썰리지 않고 먹은 마음을 따라 썰립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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