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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르고 30분…항공기 출발 지연된 이유는?

등록 2015-02-11 16:07수정 2015-02-11 19:54

대한항공 항공기
대한항공 항공기
서리제거 작업에 항공기 출발시각 지연…메뉴얼은 맞지만
30~40분 그대로 앉아 기다린 승객들 “설명이 아쉽다”
대한항공 “충분한 양해 구하지 못해 불편 끼쳐”
지난 5일 오전 6시15분 새벽바람을 가르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춘절(우리의 설날과 같은 중국 최대의 명절)을 앞둔 탓인 지 홍콩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줄은 길었다. 큼지막한 가방과 보따리를 든 중국인들 뒤로 길고 긴 줄을 서 간신히 비행기표를 얻었다. 보안검색대를 지나 출국수속을 마친 시각은 오전 8시10분. 이어 ‘8시25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홍콩행 비행기를 빨리 탑승하라’는 방송이 잇따라 나왔고, 해외여행의 ‘별미’인 면세점은 구경도 못했다. 8시20분께 허겁지겁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자리에 앉았다.

간신히 시간을 맞췄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8시25분 비행기는 출발하지 않았다. 10여분이 지났을 무렵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안전한 비행을 위해 항공기 서리제거 작업을 마치고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 작업은 30~40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라고…. 항공기 안전을 위한 조처라는데 ‘감히’ 불만을 표시하는 승객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한 승객이 승무원을 불렀다. 그는 “비행시간 맞춰 빨리 타라고 난리 칠 땐 언제고, 이제 승객들 다 태우고 항공기를 정비할 테니 30~40분씩 그대로 앉아 기다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승무원은 “항공기 안전을 위한 것이다. 서리제거 작업은 원래 손님들을 태우고 정비장으로 가서 하는 것이다. 양해해달라”고 대꾸했다. 겉모양새는 친절했지만, 찬찬히 뜯어보니 ‘너희들 안전을 위한 것이니 우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기다려라’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에 듣고 있던 기자도 가세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취재했고 지금도 취재하고 있던 기자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시내버스도 운행 전에 차량을 점검하고 유리에 성에가 끼었으면 버스기사들이 다 닦아내고 손님을 태운다. 항공기 동체에 서리가 내렸으면 미리 정비장에서 서리를 제거한 뒤 손님들을 태우고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승무원은 ‘원래 승객들을 태우고 이륙전에 정비장으로 가서 서리제거를 하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말만 앵무새 처럼 되풀이 했다.

지난 5일을 전후한 인천공항 날씨는 최저 영하 3~4도에 불과했고, 대부분 오전 중에 영상기온을 회복해 이날도 포근한 봄날 같았다. 따라서 수백명의 승객을 태운 채 서리제거 작업을 한다는 설명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급기야 같은 의문을 품고 항의를 하던 손님이 사무장을 불렀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흉내라도 내듯 ‘메뉴얼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무장 역시 ‘항공기 안전’만 얘기하며 승객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 이날 비행기는 예정보다 40분여분이 지난 오전 9시10분께 이륙 활주로로 들어섰고, 홍콩 첵납콕 공항에도 그만큼 늦게 도착했다. 한 승객은 “애초 도착 예정시간에 맞춰 첵납콕 공항에서 연계된 배(페리)에서 바이어를 만나 중국 주하이로 들어가야 했는데, 뚱딴지 같은 늑장 정비작업으로 홍콩 도착 예정 시간을 넘겨 일을 망치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겨울철 아침에 첫출발하는 항공기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서리가 끼여있기 마련이고, 정비사나 조종사는 이를 제거하는 작업을 지시한다. 이 작업은 항공기 지연은 물론 항공사 비용도 많이 소모된다. 예전에는 항공기가 있던 그 자리에서 특수차량이 와서 이런 작업을 했지만, 부동액 물질이 환경오염을 부를 수 있어 최근에는 특정한 위치로 이동시켜 한 장소에서 하도록 하기 때문에 승객들이 탑승 이후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어느정도 승객들에게 이해시키면 불만이 줄어들텐데, 그런 설명이 아쉬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땅콩 회항’ 사건이 온 국민을 분노케 한 것은 대한항공 사주 일가의 승무원에 대한 ‘갑질’ 뿐만 아니라 승객들을 허투루 취급하는 항공사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건이 불거진 지 꼭 두 달째 되던 날 기자가 탔던 대한항공 KE603. 이 항공기 역시 승객 무시는 계속되고 있었다.

홍콩 공항에 도착할 무렵 기내 방송이 다시 흘러나왔다. “서리제거 작업으로 승객 여러분께 불편함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출발할 때 벌어진 일을 도착해서 다시 양해를 구하는 이례적인 방송내용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승무원에게 “오늘 승객이 모두 몇 명입니까?”라고 물었다. 역시 상냥하게 답했다. “300명 정도 되십니다~” 라고. 그래서 계산해봤다. 300명X40분=12000분. 12000분/60분=200시간. ‘원래 그런 서리제거 작업 절차’를 이해하지 못하는 승객들은 여드레가 넘는 시간을 영문도 모른 채 허공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안내방송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조처라고 승객들에게 알려 이해를 구했음에도 충분한 양해와 설명을 드리지 못해 불편을 끼친 것 같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절대로 승객들을 허투로 취급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일련의 사건 이후 보다 나은 기내 서비스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항공사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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