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충북 청주시 소로천을 가꾼 뒤 나무를 심은 ‘함께 소로천 가꾸기’ 모임.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제공
3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옥산면 소로리 작은 개울엔 학생, 시민 등 200여명이 모였다. 누가 시킬 것도 없이 하천 주변을 치우더니 가지고 온 이팝나무·조팝나무 등을 심기 시작했다. 재잘재잘, 껄껄, 허허….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이곳은 소로리 소로천이다. 소로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마을로 지역을 대표하는 곡창지대였다. 여전히 농촌이지만 주변엔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됐고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이날 행사에도 엘지화학 오창·청주공장, 유한양행 오창공장, 에스케이하이닉스 청주공장 등 기업체 13곳과 청주시, 금강유역환경청, 소로리 주민, 옥산초 소로분교,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등이 참여했다.
민·관·산·학이 소로천 살리기에 나선 것은 ‘녹색청주협의회’의 힘이 컸다. 지난해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과 미호천 살리기를 주요 사업으로 정한 뒤 기업체와 주민, 공무원 등에게 동참을 권했다. 녹색청주협의회가 멍석을 깔자 환경단체, 기업체, 주민 등은 지난해 11월 ‘함께 소로천 가꾸기’란 모임도 만들었다. 주민들은 소로천 돌봄이를 꾸려 틈틈이 하천오염 감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업체는 임직원과 함께 수시로 소로천을 찾아 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소로천 가꾸기는 이제 이들의 일상이 됐다.
하천 정비·탄소배출 줄이기
‘도농 상생’ 로컬푸드 사업 등
도시 전체에 활력 불어넣어
시민단체 대표·시장·시의회 의장
협의회 공동의장 맡아
민·관 협력 제도적 뒷받침 탄탄
일부는 “협의회 갈길 멀어” 지적
주민참여예산제 제대로 운영하고
지역현안 대안 제시에 힘써야
녹색청주협의회, 금강유역환경청, 엘지화학 등 기업체, 옥산초등학교 소로분교 학생, 주민 등은 3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옥산면 소로천에서 이팝나무 등을 심었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제공
■ 시장은 바뀌어도 협치는 이어진다
청주의 민관 협치기구 녹색청주협의회는 20년 뿌리를 지녔다. 1990년대 ‘지방의제21’이란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서 이런 협치기구가 나타났고, 청주는 1996년 ‘푸른청주21실천협의회’를 꾸렸다. 이후 2003년 청주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로 이름을 바꿨고, 2009년 살고 싶은 청주만들기 협의체를 거쳐 2011년 12월 녹색청주협의회로 개편됐다. 전국의 지방의제 기구들이 사라지거나 이름만 남았지만 녹색청주협의회는 시민 안에 뿌리를 내린 몇 안 되는 협치기구로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있었다. 청주시민은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년부터 단 한번도 시장 연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거마다 현직 시장이 출마했지만 번번이 낙선했고, 여야가 번갈아 시장을 차지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도 전임 한범덕(63·새정치민주연합) 시장이 출마했지만, 이승훈(60·새누리당) 현 시장에게 패했다. 선거 뒤 녹색청주협의회 존폐 여부가 화제가 됐다. 한 전 시장이 ‘녹색수도 청주’를 시정 목표로 내걸고 녹색청주협의회에 힘을 실어준데다, 이 시장은 ‘일등경제 으뜸청주’를 새 시정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종을 녹색청주협의회 사무처장은 “전임 시장이 유독 ‘녹색’이라는 이미지에 집착했고, 현 시장이 워낙 경제를 강조한 터라 호사가들은 녹색청주협의회를 없애거나 적어도 이름은 바꿀 것이라고 했지만 손대지 않았다. 이 시장도 20년 협치의 큰 흐름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청주협의회는 시민단체-청주시-지방의회 등이 삼각 체계를 이루고 있다. 허원 두꺼비친구들 이사장(서원대 교수)과 이승훈 청주시장, 김병국 청주시의회 의장이 공동 의장을 맡고 있으며, 상임의장은 시민단체 좌장 격인 허원 이사장이 맡고 있다. 시의회 상임위원장단, 청주시 실·국장,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대학교수 등 29명이 상임위원을 맡는 등 민과 관, 지방의회가 두루 참여하고 있다. 민선 2기 나기정 전 청주시장도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청주시 녹색도시 기본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이창언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청주는 시민사회 활동가와 교수 등 전문가 구성이 탄탄한데다 시민 참여와 제도적인 뒷받침까지 이뤄지는 등 민관 거버넌스(협치)의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단체장의 철학과 지속가능한 역사를 축적하면 거버넌스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환경을 넘어 사회, 경제로
녹색청주협의회는 ‘녹색’이라는 이름 때문에 환경기구로 오해받곤 한다. 하지만 녹색청주협의회는 환경에 머물지 않고 사회, 경제 분야로 확대됐다. 녹색청주협의회 안에는 △농업농촌 △도시교통 △문화교육 △사회복지 △산업경제 △환경안전 등 6개 분야 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 2월 녹색청주협의회 2기 출범 때 생태환경이 환경안전으로 바뀌었으며, 갈등조정단과 정책연구단이 추가됐다.
협의회는 원탁회의가 유명하다. 지난 2월25일 정기총회 2부 행사로 200인 원탁회의가 열렸다. 시민단체 활동가, 공무원, 주민대표, 대학교수 등 전문가, 기업인 등 200명이 ‘지속가능한 녹색청주의 일등경제 실현방안’을 주제로 타운홀 미팅을 했다. 2012년에도 녹색수도 실현을 주제로 원탁회의가 열렸으며, 오는 6월 청주시와 함께 ‘맑고 깨끗한 청주 건설을 위한 300인 원탁회의’ 개최도 검토하고 있다. 청주 연초제조창 재생 문제, 대농지구 갈등 등 지역의 핵심 이슈들도 상임위원회 논의를 거쳐 공론화할 참이다.
염우 풀꿈환경재단 이사는 “전문 상임위원회를 두고, 원탁회의를 하는 것은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다. 녹색청주협의회가 환경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경제 등의 분야로 범위를 확산시켜 나가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녹색청주협의회가 지난 2월25일 시민단체 활동가, 청주시 공무원, 대학교수 등 200명과 함께 ‘지속가능한 녹색청주의 일등경제 실현방안’을 주제로 타운홀 미팅을 하고 있다. 녹색청주협의회 제공
하지만 녹색청주협의회와 환경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녹색청주협의회가 해마다 벌이고 있는 이산화탄소 줄이기 초록마을 사업은 청주의 자랑이다. 지난해 청주 시내 아파트 25곳 주민 1만6511가구가 참여했다. 청주시는 2010~2014년 이 사업으로 이산화탄소 274만4471㎏을 줄인 것으로 추정했다. 시는 30살 소나무 77만4000그루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과 비슷하고, 소나무숲 19.4㎢를 조성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2013년에는 시와 환경단체, 녹색청주협의회 등은 ‘무심천 100일의 실험’을 거쳐 1996년 건설된 무심천 하상도로 가운데 중복구간(청주대교~청남교 1.18㎞)을 폐쇄했다. 폐쇄한 도로 위에 길 카페를 만들고, 시민들은 캠핑을 하기도 했다.
‘로컬푸드’는 녹색청주협의회가 자랑하는 도농 상생 경제정책의 결실이다. 가톨릭농민회, 두꺼비협동조합 등 단체 18곳이 참여하는 로컬푸드 사업은 지난해 7월 청주·청원 통합 이후 크게 활성화하고 있다. 지난해 청주 개신 휴먼시아아파트 앞 농민장터 등에서 벌인 로컬푸드로 53억5000여만원어치의 농산물이 거래됐다.
박철규 청주시 상생협력담당관은 “지난해 7월 청주와 청원이 통합한 뒤 녹색청주협의회를 통한 도농 상생 협력은 눈부시다. 녹색청주협의회가 사회, 경제 분야까지 협치를 주도하면서 시 전체가 활력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 정책 결정 참여의 문도 열어야
녹색청주협의회는 청주의 자치단체-시민단체, 공무원-시민단체 활동가·교수 등 전문가 등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거리를 좁히는 구실을 해왔다. 허원 녹색청주협의회 상임의장은 “이제 사업, 정책 등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먼저 사업계획서를 들고 협의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민관 협치다. 시민을 적극 참여시키고, 함께 가려는 참여 행정이 필요한데 그 물꼬가 트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녹색청주협의회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참여의 폭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송재봉 충북엔지오센터장(녹색청주협의회 상임위원)은 “틀, 시스템은 제대로 이어져오고 있지만 실제적인 구실을 해왔냐는 물음에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제대로 운영하고, 연초제조창 문제 등 지역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안을 내야 하는데 솔직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시민과 공직사회의 성숙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녹색청주협의회 갈등조정단장)은 “시장의 성향, 당적을 떠나 청주의 협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협치의 축인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시민단체, 전문가, 시민 등이 조금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과 교수도 “시민의 참여 요구는 더 커지고, 눈높이가 높아져 가고 있지만 공직사회는 아직 경직돼 있다. 협치가 대세가 되게 하려면 공직사회가 좀더 유연하게 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청주/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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