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마당
경상도 사람들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여섯 글자 아래 뭉쳐왔다. ‘우리가 남이냐?’와는 단 한 음절만 다른데 지역감정을 극대화하는 효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충청도 사투리로 쓰자면 ‘우리가 남이에유?’가 되겠다. 애향심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감정은 늘 대한민국의 선거판을 흔들었다.
충청도를 지역감정의 프레임에 가둔 첫 정치인은 김종필이다. ‘핫바지’가 먹혔다. 김종필의 핫바지론은 충청도가 이놈 저놈 아무나 입을 수 있는 핫바지 취급을 당해왔다는 선동논리다. 하지만 충청도 전역에서 핫바지가 통한 것은 녹색 바람이 분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국회의원 선거가 전부다. 김종필의 고향인 충남, 대전과 달리 충북만 해도 온도차가 뚜렷했다.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으로 이어져오면서 충북에서는 오히려 진보정당보다 정당 득표율이 낮았으니 말이다.
이는 단위가 작을수록 결합력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에 가면 충북 또는 충청 향우회로 모이지만 충북 안에서는 시·군향우회, 심지어는 고교동문회로 뭉친다. 충북지역 언론들이 ‘충북은 대통령은커녕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무총리 한 명 배출하지 못했다’며 볼멘소리를 기사화해온 것도 소지역감정의 표출이다.
영호남 사람들이 보기엔 충청도는 핫바지가 맞는다. 문제는 충청에서 지역감정이 그리 파괴력이 크지 않음에도 충청권 정치인들이 여전히 지역감정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결국 석 달도 못 돼 사퇴 수순을 밟고 있는 이완구 총리의 인준을 놓고도 ‘충청에서 밀어주자’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이 그 예다.
일부 정치인들의 중부권 대망론도 같은 맥락이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언제부턴가 ‘영충호 시대’를 입에 달고 산다. 충청권 인구가 호남을 추월했으니 이제 영충호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단지 인구로 호남을 이겼다고 스스로 영남 뒤에 서는 것도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
결론은 지역감정을 깨야만 선진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충청권의 역할이 있다. 지역감정의 틈새에서 영원한 핫바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정치 개혁의 돌파구를 여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해야 할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역감정 타파는 제도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국회의원 가운데 비례대표의 비율을 높이고 소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개편해야만 영호남 지역감정에 기댄 양당 구도가 깨질 것이다. 그러니 충청지역 주민과 정치인들이 앞장서 공론화하고 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이 끝나고 “차라리 북한은 고구려, 남한은 신라, 백제로 돌아가 다시 삼국시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푸념한 친구가 있다. 충남은 몰라도 충북은 사실 백제가 돼야 할지 신라가 돼야 할지도 애매하다.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한겨레>는 매주 한 차례 지역의 주요 의제를 다룬 기고를 싣습니다. sting@hani.co.kr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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