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제주시수협 회의실에서 어선주·어민들을 상대로 열린 제주신항 설명회에서 선주인 김태남씨가 제주도와 용역업체 쪽이 신항 개발 계획을 설명하자 “어장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 어떻게 보상받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지역 현장] 제주도, 탑동 앞바다 신항 개발 논란
1980년대 후반 제주 사회는 제주시 탑동 해안 매립을 둘러싸고 큰 홍역을 치렀다. 도민 공감대 없이 사업이 강행돼 극심한 주민 갈등이 벌어졌다. 환경 파괴와 어업권 상실, 매립 사업에 따른 특혜 의혹 등으로 정당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설 정도로 제주의 최대 현안이었다. 서귀포시 강정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을 둘러싼 갈등도 의견수렴이 부족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약 30년 만에 다시 탑동 앞바다 매립이 제주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달 22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의 제주 방문에 맞춰 탑동 앞바다를 메워 제주신항을 개발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전격 공개했다. 2030년까지 초대형 크루즈 부두와 국제·국내 여객 부두, 마리나 부두 등이 들어서는 국제해양관광·레저 허브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사업비는 국비 1조1120억원과 민자 7850억원 등 2조4676억원이다.
제주도는 이 계획을 도민에게 알리지 않고 유기준 장관에게 불쑥 보고했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의를 무시한 일방통행식 행정이라며, 자칫 과거 개발사업처럼 갈등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달 말까지 의견을 수렴하는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해양수산부에 항만기본계획 변경계획을 제시하겠다”며 “의견수렴이 미흡한 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계획 자체가 졸속으로 됐거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계획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내년 3월까지 제3차 항만기본계획 수정계획을 확정하게 된다. 기본계획은 10년마다 수립하고, 변경계획은 5년마다 시행한다. 도는 뒤늦게 어민 등 단체·기관 등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이어가고 있다.
초대형 크루즈 입항 한계 내세워
도민 의견수렴 없이 개발 발표
계획대로면 10만t급 이상 6척이
2030년엔 동시 입항 가능하지만
수요 예측일뿐 사업 타당성 의문 탑동 앞바다 211만㎡ 매립 전제
생태계 파괴·어업권 침해 논란
일방 추진땐 극한 갈등 벌어질듯
환경단체·주민들, 탁상행정 비판
“기존 항만 효율적 이용 검토부터”
■ 생태계·어업권 파괴 논란
이번 신항 개발계획은 탑동 앞바다의 대규모 매립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항만 터 45만2000㎡, 배후 터 86만2000㎡ 등 모두 131만4000㎡를 매립하게 된다. 또 항만 재개발로 79만9000㎡를 추가로 매립하는 등 매립 면적이 모두 211만3000㎡에 이른다. 1980년대 후반 매립된 탑동 면적 16만5000㎡의 12배가 넘는다. 이 때문에 신항 개발은 조류의 변화 등 생태계 파괴와 어업권 상실 등의 논란과 직결된다.
채낚기어선 우정호(9.77t) 선주 김태남씨는 “100% 어족자원이 손실된다. 탑동 앞바다의 해녀 작업장만 조업이 중단되는 게 아니다. 신항이 들어서면 서쪽의 애월 해안부터 동쪽의 김녕 해안까지 조류가 바뀌고 수온도 변화한다. 이 해역에 형성돼온 어장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생기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지난 8일 어민들을 대상으로 열린 설명회에서 “어장 피해를 최대한 보상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보상으로 끝나면 되는 문제인가. 어민들의 어장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강정을 보라. 해녀들만 보상해서 나중에 주민들과 갈등이 생기지 않았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주민간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 신항 계획 발표 배경은?
제주도는 신항 개발계획의 가장 큰 이유로 초대형 크루즈의 제주 입항 증가를 꼽았다. 도는 2001년부터 20년에 걸쳐 총사업비 5648억원을 들여 추진중인 제주외항의 경우 8만t급 1선석과 서방파제에 임시로 1선석(5만t급)을 운영하고 있으나 수역이 좁아 15만t급 이상 초대형 크루즈 선박이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또 현재 내항의 여객과 화물부두가 섞여 운영되고 있고, 대형선박의 추가 취항이 어려운 것도 이유로 들었다. 이밖에 태풍이 오거나 강풍이 불면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탑동 매립지역의 도로·광장 등을 덮치는 월파 피해를 막고 제주시 원도심 개발과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김시만 제주도 해운항만과장은 “제주외항이 완공되면 물동량 처리는 가능하지만 카페리와 화물선이 대형화하면서 기존 부두 사용에 한계가 있다. 현재도 3척의 카페리가 제주에 취항하고 싶어도 하지 못해 대기중이다. 크루즈는 2020년까지는 문제없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수요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생기 국장은 “신항 개발계획이 추진되면 22만t급 크루즈와 국제 여객 카페리 등을 수용하는 관광레저 항만이 될 것이다. 제주시 원도심 재생이라는 시너지 효과도 낼 것”이라고 했다.
■ 크루즈 입항 분석 타당한가?
제주도가 추정하는 크루즈 부두 필요 규모는 2030년에 3선석이다. 이번 도가 밝힌 계획을 보면, 22만t급 1선석, 15만t급 2선석, 10만t급 1선석 등 4척의 대형 크루즈가 접안하게 된다. 강정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에 건설중인 크루즈 부두는 15만t급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시설로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도의 계획대로 이뤄지면 2030년에는 6척의 10만t급 이상 크루즈가 한꺼번에 제주항과 강정항에 접안할 수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추정한 크루즈의 제주항 입항횟수와 여객 수를 보면 2014년 259회(49만명), 2015년 424회(60만명), 2020년 356회(53만명), 2025년 476회(74만명), 2030년 637회(103만명)다. 김 과장은 “수요 예측 결과 강정항을 포함하면 연간 1000회 들어온다고 돼 있다. 하루에 강정항에 2척, 제주항에 3척 등 5척이 동시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추정치와 실제 크루즈 입항횟수와 여객 수요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크루즈의 입항횟수와 여객은 242회에 59만명이고, 올해의 유치목표는 320회 입항에 65만명이다. 올해의 경우 해양수산개발원의 추정치가 제주도의 크루즈 입항횟수 목표보다 104회나 많다. 해양수산개발원 관계자는 “수요는 지난해 대략 추정한 것으로, 확정된 수요가 아니라 초안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갈등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강정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건설되는 가운데 제주신항 개발계획이 발표됐다. 신항의 크루즈 부두가 건설되면 강정항은 군항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강정에 15만t급 2선석을 배치할 수 있는 크루즈 부두를 건설하고 있는데 제주항에 10만t급 이상 4선석을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은 해군기지 전용이라고 실토하는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 탑동 매립 갈등에서 교훈을
제주 사회는 탑동 매립사업을 시작으로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해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겪었다. 논란의 핵심은 의견수렴을 통한 도민 공감대 형성 부족이다. 최근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18개 단체로 구성된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성명을 내어 “제주신항 개발계획은 누구를 위한 시설인가”라며 “신항 개발계획은 어민 등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은 물론 도민 공론화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비판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생태계 파괴 등 환경문제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하는데 도에서 밀어붙이려는 것 같다. 매립터에 상업시설들이 들어서면 원도심이 살아나겠느냐. 오히려 제주시 원도심과 이분화돼 원도심이 더 침체될 수도 있다”며 “과거의 일방통행식 개발행정에서 벗어나 도민 공감대 형성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주도가 도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도민 의견수렴 없이 개발 발표
계획대로면 10만t급 이상 6척이
2030년엔 동시 입항 가능하지만
수요 예측일뿐 사업 타당성 의문 탑동 앞바다 211만㎡ 매립 전제
생태계 파괴·어업권 침해 논란
일방 추진땐 극한 갈등 벌어질듯
환경단체·주민들, 탁상행정 비판
“기존 항만 효율적 이용 검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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