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
엔지오센터에서 한데 모여
처음으로 합동행사로 치러
“희생 사건 85% 아직 묻혀 있어”
엔지오센터에서 한데 모여
처음으로 합동행사로 치러
“희생 사건 85% 아직 묻혀 있어”
“아버지, 65년 만에 불효자식이 왔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셨나요.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 채 지하에서 통곡하시지요….”
한국전쟁 앞뒤로 군경 등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져간 충북지역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65년 만에 처음으로 한데 모여 희생 영령들의 넋을 달랬다. 지난해 꾸려진 충북보도연맹유족회는 1일 오후 2시 충북엔지오센터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추모제’를 지냈다. 추모제는 오세란 예술공장두레 이사장의 진혼무, 전통제례, 종교의례, 묵념, 추모공연, 헌화·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박만순 시민모임 ‘함께 사는 우리’ 대표는 “65년 전 음력 5월20일 앞뒤로 보도연맹 사건 등에 연루돼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이맘때 보도연맹 희생 유족들이 각자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점을 떠올려 처음으로 합동 추모제를 올렸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지금껏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거나 보상을 받은 적이 없는 이가 대부분이다. 참여정부 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법’이 만들어지고, 진실화해위원회 등이 지역 곳곳의 보도연맹 사건 등을 조사했지만 이들은 응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나이가 많아 법이 만들어졌는지도, 또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가 이뤄지는지도, 보상이 이뤄지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아직까지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두려워해 나서지 못한 이도 많다. 충북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의 85%는 아직 묻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지역에 묻혀 있는 피해 사례들도 소개됐다. 안희성(91)씨는 ‘안덕벌이 과부촌이 된 사연’이란 증언을 통해 청주 안덕벌(내덕동) 청년 50여명이 청주 고은리 분터골, 보은 아곡리 등에서 희생된 사실을 알렸다. 안씨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약 150가구가 살았던 안덕벌에서 과부가 40명이나 생겼다. 이후 과부들은 두부·콩나물 장사로 연명했고, 안덕벌은 과부촌으로 불렸다”고 했다. 박춘순(72)씨는 7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떠올렸다. 박씨는 “걸어 나갔다가 멍석에 싸여 주검으로 온 아버지를 마당에 모셔놓고 온 식구가 울었다. 훗날 아버지를 만나면 홀로 된 어머니와 힘겹게 산 이야기와 아직도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이세찬 충북보도연맹유족회장은 “군경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를 가슴에 안고 입이 있어도 말 못 하고, 눈이 있어도 못 본 채 살아왔다. 이제는 말하겠다. 정부는 과거사법 제·개정을 통해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정직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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