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화 명인 우종필씨
대구수제화협회 회장 우종필씨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해 수제화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싶어요.”
대구시 중구 향촌동 수제화 거리에서 일하는 수제화 명인 우종필(52·사진)씨는 구두 만드랴 늦깎이 중학생 생활하랴 여념이 없다. 그는 한달 내내 휴일도 없이 구두 매장을 운영하면서 월·수·금요일에는 성인문해학교인 대구내일학교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꼬박꼬박 수업에 참가한다. 1년 과정이 끝나는 오는 9월 그는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고 졸업한다.
우씨는 향촌동 수제화 거리 78개 업체 중 46개 업체가 가입한 대구수제화협회 회장에다 5개 수제화업체가 공동 운영하는 마을기업 ‘편아지오’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 수제화 명인, 대한민국 신지식인 등에 선정될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던 그에게는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운동선수 생활 중 다쳐 집에서 쉬다가 그 길로 가업을 이어 37년간 수제화만 만들어왔다. 그가 구두 제작에 빠진 70년대는 수제화 시장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대구역 주변과 교동시장, 향촌동 일대에 수제화 업소가 130여개쯤 있었고, 지금은 귀금속업체가 밀집한 대구역 부근은 금은방이 반, 구둣방이 반이었다고 한다.
우씨는 “60∼70년대 대구 수제화는 전국 최고였는데 남자 구두는 대구, 여자 구두는 서울, 운동화는 부산이 유명했다”며 “수제화 기술자로 일주일을 일하면 직장인한 달 월급을 벌었다”고 떠올렸다. 또 “수요도 많았지만, 당시 수제화는 대학·직장에 들어갈 때나 결혼할 때 부모가 특별히 맞춰주는 것이어서 의미도 남달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성품이 점차 시장을 잠식하면서 수제화는 본래의 지위를 잃었고, 대구역을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가게들은 인근 향촌동으로 밀려났다. 수제화가 되살아난 것은 2013년 향촌동 수제화 거리에 마을기업이 들어서면서부터다. 대구 중구와 대구수제화협회가 공동으로 수제화 브랜드를 개발하고 공동 판매장을 운영하기로 한 계획이 안전행정부 마을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돼 사업비와 경영 컨설팅을 지원받았다. 우씨의 아들도 가업을 이어 받으려고 3대째 수제화를 만들고 있다.
우씨는 “내년에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중에 대학교까지 마쳐 수제화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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