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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현장에서] 언론과 행정의 ‘전시회 취소 코미디’

등록 2015-08-17 22:36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제주에서는 한편의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야스쿠니-군국주의 망령’ 사진전을 위해 제주시 제주목관아 앞에 들어가려던 권철 사진작가와 간드락소극장 관계자들이 이날 오전 10시 시청 직원 10여명에게 제지당했다.

결국 사진전은 목관아 안에서는 열리지 못했고, 바로 앞 관덕정 광장에서만 열렸다. 사진전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제주도는 각종 군사시설 구축에 도민들이 동원되고, 일본군 6만5000여명이 미군과의 전쟁에 대비해 집결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가 활개쳤던 곳이다.

그런데도 일본의 군국주의를 고발하는 전시회가 거부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 시는 권 작가와 간드락소극장이 지난 10일 사진전(15일~9월26일)에 따른 목관아 일대 장소 사용허가 신청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허가했다.

그러나 시는 13일 이를 취소했다. 시의 조처는 지역 일간지 보도가 발단이 됐다. 신문은 “광복 70주년을 주제로 ‘야스쿠니’ 사진전이 열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민 사회가 술렁거리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인정한다고 해도 식민역사를 부정하는 ‘야스쿠니’ 풍경 사진을 관덕정에 걸어놓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허가해준 제주시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시는 이 기사에 장단을 맞췄다. 시는 “목관아의 역사성과 광복 70주년 계기 경축 분위기에 (전시회) 장소가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돼 장소 사용 허가를 취소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권 작가는 전시 의도에 대해 “야스쿠니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짓누른 일본 군국주의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야스쿠니 이면에 담긴 의미를 도민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권 작가는 야스쿠니의 실제 모습을 10여년 동안 기록하면서 일본 우익으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고 했다. 일본 군국주의 고발을 언론과 행정이 막은 셈이 됐다.

허호준 기자
허호준 기자
김병립 시장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주최 쪽, 사진작가와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김 시장의 말대로 행정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발생한 일인가? 시청이 전시 의도를 파악했다면 곧바로 취소 결정을 번복해야 했다. 언론과 행정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사진작가의 명예는 큰 상처를 입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내건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라는 도정 슬로건이 초라해 보인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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