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 근처에 있는 주유소를 빌려 땅굴을 판 뒤 수십억원 어치의 기름을 훔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수도관으로 수돗물을 필요한 곳으로 보내듯이 송유관은 석유를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수송한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수절도 및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총책 박아무개(48)씨 등 11명을 구속하고, 이아무개(49)씨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또 현금 3억원과 1㎏짜리 금괴 11개(5억원 어치)를 압수했다.
박씨 등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경기도 용인, 평택, 경북 김천, 충북 청주 등 전국 7곳에서 송유관을 뚫어 81억원 어치의 기름(450만ℓ)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미리 송유관이 지나는 곳을 파악한 뒤 주변에 있는 주유소를 빌려 보일러실이나 숙직실 지하에 땅굴을 파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주유소는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워 위장 영업하면서, 아르바이트생조차 송유관 기름 절도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주로 밤에 지하에서 땅굴을 팠고, 삽을 짧게 특수 제작하거나 폭발 방지 연결관을 자체 제작해 좁은 땅굴 속에서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판 땅굴은 깊이 2.5m, 길이만 10∼50m에 달했다.
특히 이들은 한번에 대량으로 기름을 훔칠 경우 대한송유관공사 유압관리 시스템에 적발된다는 사실을 알고, 소량의 기름을 수시로 훔치는 식으로 범행했다. 훔친 기름은 위장 영업 중인 주유소에서 판매하거나, 도매상격인 저유소에 제값을 받고 팔았다.
경찰은 또다른 송유관 절도단 총책 김아무개(48)씨 등 5명을 구속하고, 또다른 김아무개(46)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인천, 전남 순천 등 2곳에서 주차장 부지 등을 빌려 땅굴을 파 송유관에서 2억원 어치의 기름(13만ℓ)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주차장 터에 울타리를 쳐놓고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한 뒤 바닥을 뚫어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송유관공사의 유압 체크 시스템상 기름 절도가 의심되더라도 반경 2.5∼10㎞ 정도까지만 확인돼 현장을 단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피의자 상당수는 유사석유 판매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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