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분신으로 숨진 노동자 배달호씨를 추모하는 집회가 그해 1월14일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열렸다. 김영만 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기자회견문을 읽는 동안 유족이 흐느끼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배달호씨, 노동탄압 항의해 목숨 끊어
생전에 지인 위해 대출 연대보증
국민행복기금, 유족 상대 소송
유족 “대출자 몰라…소멸시효 넘어”
변호사 “회생자 돕는 기관 맞나” 비판
생전에 지인 위해 대출 연대보증
국민행복기금, 유족 상대 소송
유족 “대출자 몰라…소멸시효 넘어”
변호사 “회생자 돕는 기관 맞나” 비판
12년 전 회사 쪽의 노조 탄압에 항의해 분신자살한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사망 당시 50)씨가 생전에 다른 이의 대출에 대해 연대보증을 섰는데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는다며, 대출채권을 확보한 ㈜국민행복기금이 배씨의 유족들에게 연대보증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배씨 유족들은 “대출을 받았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며 반발하고 있다.
15일 국민행복기금과 배달호씨 유족 쪽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연락도 닿지 않는 박아무개(56)씨가 2001년 충남 ㅇ농협에서 400만원을 빌릴 때 배씨가 연대보증을 섰다. 박씨는 돈을 갚지 않았고, ㅇ농협은 박씨에 대한 채권을 2013년 국민행복기금에 넘겼다.
국민행복기금은 박씨를 대신해 연대보증인인 배씨에게 원금 400만원과 이자 187만8970원 등 587만8970원을 갚으라며 지난해 양수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배씨가 숨진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달 초 배씨의 부인과 두 딸 등 상속인으로 피고를 바꿨다. 첫 재판은 오는 2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이에 대해 배씨 유족들은 “대출을 받은 박씨가 누구인지 모르며, 배씨가 언제 왜 이 사람에게 연대보증을 해줬는지도 모른다”며 반발하고 있다.
배씨 유족들의 소송대리인으로 나선 박훈 변호사는 “국민행복기금 주장처럼 배씨가 생전에 박씨의 연대보증을 섰다 하더라도, 소멸시효 5년을 훨씬 넘긴 지금 와서 왜 책임을 묻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박 변호사는 “유족들은 배씨 사망 이후 매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채무를 조정해줌으로써 빚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재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인 국민행복기금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국민행복기금은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이들의 경제적 회생을 위해 연체채권 채무조정 등을 해주는 종합 신용회복 지원기관이다.
이에 대해 국민행복기금 쪽은 “100여만명의 채권 200여만건을 관리하고 있어, 고객 개인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소멸시효 문제는 구체적으로 살펴봐야겠지만, ㅇ농협에서 채권을 넘겨받을 당시 2014년 6월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는 자료를 받았기 때문에 이를 믿고 소멸시효 완성 직전에 소송을 제기했다. 안타깝지만 법적으로 정당한 조처이기 때문에 재판을 통해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배달호씨는 2003년 1월9일 새벽 조합원 개인의 재산과 급여에 대한 가압류 등을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 사내노동자광장에서 분신자살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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