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사진 허호준 기자
[짬]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문정현 신부 ‘긴조 보상금’으로 터 마련
성직자·신자·시민 6800명 성금 보태 초대 이사장 맡아 ‘평화 전초기지’ 구상
‘4·3’과 전쟁 유적 등 순례프로그램도
“국가폭력 부당성 알려 구럼비 승리를” 평화센터는 강정마을 지킴이로 정착한 문정현 신부가 박정희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9호’ 위헌 결정에 따라 받은 정부 보상금으로 마련해놓은 터에 전국의 성직자를 비롯 신자·시민 등 6800여명이 모은 성금으로 건립됐다. 연면적 748㎡의 5층 규모인 평화센터는 강정마을을 평화공동체로 만들고, 주민들의 갈등을 치유하는 한편 생명과 평화를 실현하는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8년 동안 치열하게 전개된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의 한복판에는 주민·활동가들과 함께 해온 천주교 성직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강 주교가 있었다.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는 날마다 생명평화미사가 열렸고, 강정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 지난 13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관에서 만난 강 주교는 “38선에서 가장 먼 곳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당장의 방어보다는 막연한 대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투쟁을 지원해온 많은 분들이 어차피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들 의문을 제기해왔죠. 그래서 오히려 군사기지가 있기 때문에 무력으로 전쟁과 평화 사이에 줄타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하게 호소할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강 주교는 지속적인 평화운동을 강조했다. 그는 “능동적으로 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평화를 향한 새로운 발돋음을 해야 한다. 의식 전환을 위한 교육과 현장체험, 다양한 문화예술공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평화를 찾는 단계로 옮겨가자는 뜻에서 센터를 평화운동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가 강정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주4·3항쟁’이었다. 2002년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한 그는 4·3의 비극적 실상에 충격을 받았다. “국가공권력이 무고한 자기 백성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는데, 그에 대한 역사적 정리나 합당한 평가도 없이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 전체가 4·3을 모르거나 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제주의 상처에 대한 치유나 보상도 없는 마당에 또 다시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국가폭력을 정당화 시키는 것 같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구요.” 그는 “4·3은 정당성 없는 국가폭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과를 했지만) 정부 최고위층 몇사람의 말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책임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더 나은 역사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화센터를 통해 ‘평화의 순례지’로서 제주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고 싶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그의 눈에 제주만큼 평화를 생각하는 조건이 갖춰진 곳은 없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군사시설과 4·3 유적지, 한국전쟁 유적지가 곳곳에 있다. “제주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고 감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섬의 역사와 주민 삶의 궤적을 살피고 공유할 수 있도록 평화순례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고 싶다.” 주민들은 물론 전 세계 평화운동가들의 거센 반대에도 강정 해군기지는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공권력에 대한 주민들의 피해의식과 패배의식의 치유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강 주교는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편법과 거짓이 이뤄졌느냐”고 되묻고 “그로인한 주민들의 상처와 좌절감이 매우 큰만큼, 그런 불의가 정당화되지 않도록 끝내 평화가 승리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일까? “궁극적인 평화란 결국 나와 맞지 않는 사람,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고 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것, 인간과 인간의 화합과 만남이 이뤄지는 것 아니겠어요? 단순히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평화가 아니고 궁극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모든 적개심과 미움, 편견과 차별의식을 극복해내는 것이 평화입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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